"유학 갔다 와도 고연봉 못 받는다"…압구정으로 몰리는 이유 [대치동 이야기?]

입력 2024-07-29 09:00   수정 2024-07-29 09:54



“다른 학원들과 다르게 유학 시장은 ‘교육’보다는 ‘정보 싸움’이 더 치열한 곳입니다. 가르치는 강사 한 명 없이 학원 중개만으로 롱런하는 곳도 많고요.”

2000년대 초 조기유학 ‘붐’이 일어난 이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유학 업계에는 크고 작은 학원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큰 유학원에 소속됐던 직원이 독립해 유학원을 개원하고, 그 유학원의 직원이 또 다른 유학원을 여는 일이 흔했다. 지금 역시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남에서 10년 이상 유학원을 운영해 온 한 원장은 “유학 수요의 변화에 따라서 학원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하긴 하지만, 유학원 생태계가 특별히 변하지는 않았다”며 “교육 관련 경험이 없어도 신고만 하면 유학원을 세울 수 있어 지금도 신생 유학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원은 강남→압구정으로

2000년대 초는 ‘조기유학 1세대’가 탄생한 시기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엄마들이 따라 나서면서 ‘기러기 아빠’라는 말도 이 때 등장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국외 한국인 유학생은 2006~2007년에 가장 많았다. 이 시기에는 초·중·고 학생 2만9511명이 유학을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 시기 유학의 인기에는 국내 대학의 재외국민특별전형도 한몫했다. 이 전형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시작된 입시전형이다. 각 대학들이 점차 이 전형의 모집인원을 늘리면서 국내 대학을 노리는 학생들이 전략적으로 해외에 가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조기유학생들이 국외 대학 진학에 나섰다. 이들의 특징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외국 생활을 하다 대입을 하는 고등학교 시기에는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입시를 준비한 것이다. 이들 ‘리터니’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 시장이 커진 것이 이 때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과 대학 학점 선이수(AP) 시험을 대비시켜주는 학원이 성행했고, 유학원들은 활발히 학원 중개를 했다.

이 시기 유명한 학원들은 대부분 강남역 인근에 있었다. 올해로 문을 연 지 43년이 된 종로유학원도, 25년이 된 edm유학센터 모두 강남에 본사를 두고 있다. 지금은 압구정이 유학원의 메카로 떠올랐다. 한 유학원 대표는 “조기 유학 비용이 여전히 높아 유학원이 기존 고소득 동네였던 강남에서 최근 고소득 동네인 압구정으로 옮겨 갔다”고 설명했다.
○대중적 인기↓최상위권 인기↑

2000년대에는 무더기로 해외 유학을 떠났다면, 2010년대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해외 대학 출신들의 부적응이나 취직 실패 사례가 알려지면서다. 마이클 최 힙스유학원 원장은 “과거 해외 유학생이 귀했던 때에는 입사를 할 때 높은 직함을 주는 등 많은 특혜가 있었다”며 “하지만 점차 유학생과 국내 대학생이 취업 시장에서 같은 대우를 받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유학생을 선호하지 않는 기업들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내에 유학에 대한 다양한 대체재들이 생긴 것도 이유가 됐다. 국제고, 외고 등 다양한 공교육 수단이 생겨났고, 제주영어교육도시도 유학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최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학이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여전히 최상류층은 해외대학의 타이틀과 뛰어난 교육 자원을 누리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한 유학원 관계자는 “이제는 미국에서도 최상위권 시장을 노려야 하는 때”라며 “중상위 대학이 아닌 아이비리그 이상의 대학을 가기 위한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니즈가 구체화되면서 유학원들도 쪼개지기 시작했다. 일부 학원은 에세이를 잘 가르치고, 다른 학원은 액티비티를 잘 컨설팅하는 식이다.
○'좋은 유학원' 찾는 법은
유학원은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두드러진다. 100% 사교육의 영역에서 경쟁이 벌어지는 만큼 많이 아는 학부모가 성공하는 ‘정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또 유학원은 특별한 자격 조건 없이 신고제를 통해서 세울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대형 유학원에서 일을 배운 뒤 독립해 유학원을 개원하는 경우도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유학원이라고 해서 상담의 질이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장기간 교육된 인력이 빠져나간 자리에 경력이 없는 컨설턴드들이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유학원 대표는 “지금까지도 학생에 대해선 별다른 고민 없이 그저 커미션만 많이 받기 위해 질이 떨어지는 보딩스쿨, 홈스테이와 연결하는 학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학원에 모든 것을 믿고 맡기기보다는 학부모가 스스로 현지 보딩스쿨 등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김종애 세계로유학원 원장은 “유학원은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 컨설팅 비용이 천차만별”이라며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만 알고 있다’는 얘기에 혹해 엉뚱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주변 성공 사례를 많이 모으고 학부모가 직접 정보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자녀의 학업 능력뿐만 아니라 영어 능력도 미리 대비해야 실력에 맞춘 진학을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김 원장은 “아무리 성적이 좋았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 갑자기 보딩스쿨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대부분 영어유치원 보냈던 자녀들이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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