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개정한다.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뿐 아니라 순환경제를 포함한 4대 환경목표(물, 순환경제, 오염 방지, 생물다양성)에 기여하는 사업에 녹색자금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서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 녹색투자 활성화를 위해 올해 안에 K-택소노미를 개정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K-택소노미와 관련한 용역을 마무리 짓고 이를 토대로 6월부터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앞서 환경부는 위장 환경주의(그린워싱)를 방지하고 녹색산업으로의 자금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2021년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가이드라인)’를 공개했다. 이후 2022년 9월 원전을 포함한 K-택소노미 초안을 발표하고, 2022년 12월 이를 확정했다.
K-택소노미는 탄소중립과 환경 개선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하는 원칙과 분류 기준을 담고 있다. 6대 환경목표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이다.
6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에 기여하고, 기술적 기준을 충족하며, 다른 환경목표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분류된다. 인권, 노동, 안전, 반부패, 문화재 파괴 등 관련 법규도 준수해야 한다. K-택소노미는 녹색과 전환 두 부문 74개 경제활동에 대한 친환경 판별 기준을 제시한다.
환경부는 자연자본 공시, UN 플라스틱 협약, EU 택소노미 개정 등 국내외 동향을 반영해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부문 4가지 환경목표를 대상으로 개정 작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4대 환경목표 재정비
지난 6월 27일에는 서울역 인근 회의실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개정 이해관계자 협의체’ 1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순환경제 중 지속가능한 생산, 소비와 관련한 경제활동을 논의하고 녹색 판단 기준을 구체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체에는 4가지 환경목표별 세부 분과에 따라 전문가, 산업계, 금융계, 시민사회, 관계 부처가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는 해당 협의체를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녹색분류체계 개정 최종안을 올 하반기에 확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협의체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4가지 환경목표와 관련해 최근 개정되어 비교적 까다로운 유럽연합(EU) 택소노미의 기술적 검토 기준 중 국내 적용 가능한 부분을 살펴보고, 국내에 반드시 추가해야 하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선별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K-택소노미는 활동 기준, 인정 기준, 배제 기준, 보호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한다. 여기서 인정 기준을 충족하는 데는 기술적 검토 기준이 활용된다. 예를 들어 친환경 건물이나 데이터센터로 인정받으려면 기술적 검토 기준에 따라 관련 친환경 인증을 취득해야 한다. 전환 부문이 비교적 더 까다로운 기술적 검토 기준이 적용된다.
앞서 EU는 2023년 6월 택소노미와 관련한 환경위임법을 개정해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등 4가지 환경목표와 관련한 35개 경제활동에 대한 기술적 검토 기준을 정비했다.
서영태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녹색분류체계는 이미 금융권에서 진정한 녹색 기준으로 확산해 활용되고 있다”며 “이번 협의체를 통해 녹색분류체계를 고도화해 필요한 사업 분야에 녹색자금이 흘러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환경부의 4가지 환경목표(물, 순환경제, 오염 방지, 생물다양성)를 대상으로 한 택소노미 개정 작업은 올해 안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이번 개정에 이어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을 포함한 택소노미 전반에 대한 개정을 2025년 12월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택소노미 기반 금융 공급 본격화
한편 K-택소노미를 활용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기 위해 2024년부터 2027년까지 30조 원 규모의 녹색자금을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기존 녹색채권에 머물러 있던 K-택소노미 활용처를 여신으로 확대하기 위해 올해 안에 녹색 여신 관리지침을 마련한다. 기업의 택소노미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택소노미를 부분적으로 충족하더라도 녹색 여신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에 투자해 수주 가능성 및 사업 안정성을 높이는 녹색 수출 펀드를 올해 신설한다. 우수한 녹색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영세성으로 인해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보증기금과 함께 녹색산업 기술보증 사업을 신설해 녹색기업에 대한 보증 지원 규모를 확대한다.
녹색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반도 마련한다. 탄소중립 관련 전문성 부족, 그린워싱 우려 등으로 녹색투자에 소극적인 기업과 금융기관의 녹색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판단을 지원하기 위한 기준과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ESG 공시도 ‘택소노미’ 적극 활용
환경산업 특수분류체계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의 연계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기후 공시 및 환경 정보공개 내 녹색분류체계를 자율 항목으로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녹색분류체계 정보공개 시범 사업도 추진한다. 친환경 경제활동과 관련한 매출액, 자본지출, 운영비용 등이 공시 대상 정보다.
이 밖에도 EU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택소노미 기반 정보 공시를 요구하고 있어 ESG 공시 의무화 과정에서 택소노미를 활용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ESRS는 기후변화(E1), 오염(E2), 생물다양성과 생태계(E4) 항목이 택소노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ISSB IFRS S2(기후 공시)도 기후변화 관련 지출 계획을 요구하는데, 특히 기후 관련 자본 지출은 택소노미 정보로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한국ESG기준원, S&P 글로벌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등이 택소노미 관련 정보를 활용해 ESG 평가를 실시한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 NH농협금융 등이 지난해 택소노미 정보를 공시한 바 있다. ESG 평가업계 관계자는 “녹색 금융 공급뿐 아니라 ESG 공시에서도 택소노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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