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수사 없는 곳에서 태어나길","일만 하다 별이 된 젊은 수사경찰관 외면하지 말라"….
23일 오전 11시께 서울 관악경찰서 민원봉사실 앞에 60여개의 근조화환이 빽빽이 놓였다. 지난 19일 '업무 과중'을 호소하다 숨진 관악경찰서 소속 30대 경위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숨진 경찰관이 수사경찰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경찰 사이에서는 현장 수사관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수사기관의 고소·고발 반려제도를 폐지하는 수사준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공소시효 도래, 피의자 사망, 권한의 없는 사람의 고소,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철회한 경우 등은 고소·고발의 기본 여건을 갖추지 못해 고소·고발장을 반려했지만, 이제는 무조건 접수한 뒤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고소·고발 반려가 막히며 수사관의 업무량이 폭증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대 경찰 A씨는 "수사과로 배치받은 후 업무 부담으로 우울증이 생겨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도 많다"며 "고소·고발 사건은 계속 쌓이고 있는데 인력 충원은 안 해주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서울 일선서 소속 40대 경감 B씨는 "경찰 사이에서 '수사과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다"고 전했다.
무리한 고소·고발 탓에 경찰력이 낭비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터무니없는 고소·고발장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중요한 사건을 수사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이유다. 서울 일선서 40대 경위 C씨는 "'누군가가 나를 음해할 목적으로 내 집 주소와 개인정보를 해킹해 내 집 앞에 죽은 쥐를 가져다 놓았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받은 적이 있다"며 "이런 황당한 고소장도 반려하지 못하게 된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며 혀를 찼다. 이런 사건을 수사관들은 일명 '또라이 사건'이라는 은어로 부른다고 한다.
투자리딩방 사기, 로맨스스캠, 코인 사기 등 나날이 진화하는 신종 사기는 수사경찰의 업무 과중을 더한다. 이같은 신종 사기는 수사 난도가 높고, 용의자가 해외에 있으면 검거도 어렵다. 신종 사기의 등장으로 경찰의 사기 범죄 검거율은 2017년 81.1%에서 2022년 54.6%까지 떨어졌다.
'한국인은 고소·고발의 민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발되는 고소·고발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년 동안 접수된 고소·고발은 48만1231건으로 이는 한국과 형사 체계가 유사한 일본과 비교하면 40배가 넘는 수준이다. 일본 인구는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전문가들은 수사 환경을 개선하는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고소·고발 사건 외에도 내사, 인지수사, 보고서 작성 등의 행정업무까지 포함하면 수사관 1명이 떠안는 업무량이 상당하다"며 "수사 인력 보강과 업무 분산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이어 "퇴임 경찰관을 수사 보조 인력으로 채용해 보고서 작성 등 행정적인 업무를 맡기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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