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보지도 않은 책 수두룩한데…학원비 맞먹는 교재비 '한숨'

입력 2024-07-23 16:34   수정 2024-07-23 16:34


“교재비가 '제2의 학원비'로 불립니다. 펴보지도 않은 새 책이 수두룩하지만, 수업을 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또 사야 해요.”

올해 자녀를 시대인재 재수종합반에 보낸 한 학부모는 “6개월간 교재비로만 300만원 넘게 지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월 50만원 이상을 교재비로 쓴 셈이다.

23일 입시업계에 따르면 많은 입시학원에서 교육 당국이 정한 교습비 상한선을 우회해 높은 교재비, 자습실 이용료 등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 근절 의지에도 불구하고, 학원가에서는 여전히 교재 ‘끼워팔기’나 수험생 불안감을 이용한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업료 뺀 교재·자습비만 460만원
서울 대치동의 시대인재 학원의 경우, 올해 2월 개강한 재수 종합반 6개월 비용이 1585만790원에 달했다. 이 중 수업료는 966만5960원으로 61.0%를 차지했고, 이어 교재비 307만6000원(19.4%), 자습실 이용료 155만6330원(9.8%), 급식비 155만2500원(9.8%) 순이었다. 교재비만 월 51만원가량 지출한 것이다.

이 학원은 학기별 ‘교재비’와 월별 ‘콘텐츠비’, 사설 모의고사 비용 등 다양한 명목으로 책값을 청구하고 있다. 학원에서 판매하는 자체 교재 가격은 시중 교재에 비해 몇 배 비싸다. 예를 들어 ‘이감 모의고사’는 국어 모의고사 5회분이 6만5000원에 달한다. EBS 모의고사(3회분 1만1000원)의 3.5배에 달한다.

인터넷 강의 업체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대부분의 인강 업체들은 ‘프리패스’라 불리는 연간 무제한 강의 수강 상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지만, 교재비가 수업료를 훨씬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메가스터디는 작년 11월 2025학년도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수업 무제한 상품인 ‘메가패스’를 53만원에 판매했다. 교재는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예컨대 국어 ‘1타 강사’로 꼽히는 A강사의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1년 동안 교재만 15권, 총 31만3000원어치를 사야 한다. 수학 B강사의 경우 같은 기간 교재만 19권, 총 60만6000원 상당이다.
학원비 대신 교재비
교재비가 비싸진 이유 중 하나는 개발비 증가다. '킬러 문항' 출제로 수준 높은 문제 풀이 경험이 수능 점수와 직결되면서 교재가 학원들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최근 사교육 카르텔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일부 학원들은 학교 교사에게 문항 하나당 50만원 이상을 지불하며 문제를 구매하기도 했다.

더 큰 이유는 교습비 상한선 때문에 학원비를 마음대로 울릴 수 없다는 점이다. 각 교육지원청은 5~7년마다 학원 관계자, 회계 전문가, 학부모 등 7~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려 교습비 상한선을 정한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의 교습비 조정 기준은 입시학원 종합 수업 기준으로 분당 단가 130원이다. 온라인 강의의 경우 분당 단가 99원이다.

그러나 학원가에서는 이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한 학원 관계자는 "강남 일대는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 임대료가 비싸고 강사료도 높아 교습비 기준 이하로 운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구본창 사교육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비싼 교재는 극화된 사교육 경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양질의 교육 자원이 사교육에 편중돼 소수만 혜택을 받는 현재의 기형적 교육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부는 ‘초등 의대반’ 등 과도한 선행학습이 성행하고 있는 점을 우려해 지난달 3일부터 학원가 특별 점검에 나섰다. 현재까지 130건의 거짓·과장 의심 광고가 적발됐으며, 향후 각 시도교육청은 점검 결과에 따라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이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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