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창업 생태계가 쪼그라든 원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1억원 안팎씩 찔끔찔끔 투자받은 청년들이 번듯한 기업을 일구는 사례는 1%도 안 될 것”이라며 “지원 요건을 강화해 역량 있는 창업가에게 확실한 기회를 주는 식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금리 여파와 경기침체 장기화로 국내 창업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창업 건수는 19만7155건에 그치며 4년 만에 증가세가 꺾였다. 지난해 동기 대비 약 40% 줄어든 수치다. 폐업·파산 건수는 해마다 증가 추세다. 올 상반기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987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36.3% 늘었다.
업계에선 “정부의 살포식 지원이 창업 기업들의 역량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 불황으로 벤처캐피털(VC)업계가 지갑을 닫은 탓에 예비·초기 창업가의 관심은 정부 지원에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생색내기식 행정에 매몰돼 지원 범위를 넓히면서 되레 ‘알짜’ 기업들이 빛을 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창업 3년 차인 한 정보기술(IT)업체 대표는 “코로나19 당시 플랫폼 분야 창업이 인기를 끌 때는 기류에 편승해 정부 지원금을 타내는 등 소위 눈먼 돈이 많았다”며 “유망 창업자에게 10억~20억원씩 실속 있게 지원했으면 경제 효과가 더 컸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표적 창업지원기관인 중기부 산하 창업진흥원의 예산은 박근혜 정부인 2016년 1569억8600만원에서 2017년 2389억1000만원으로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0년에는 5562억8400만원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이 기간 창업진흥원 지원 사업에 참여한 이후 매출·고용 창출, 투자 유치에 실패해 ‘좀비 기업’으로 전락한 곳은 1239곳에 달한다. 이 기업에 지원한 예산은 717억원에 달한다. 창업 10년 차인 한 제조업체 대표는 “작년 이후 창업진흥원 예산도 조정되고 지원 요건도 전보다 까다로워졌다”며 “적재적소에 세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살포식 창업 지원금 제도의 부메랑은 창업 생태계 곳곳을 멍들게 하고 있다. 그나마 성공적인 창업 지원 정책으로 평가받는 중기부의 팁스(TIPS) 프로그램은 벌써 올해 예산이 고갈돼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업 지원은 퍼주기식 복지가 아니라 역량 있는 창업가를 위한 성공 마중물”이라고 말한 한 창업가의 힘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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