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빗썸發 '이자율 연 4%' 소동이 남긴 씁쓸한 뒷맛

입력 2024-07-24 17:30   수정 2024-07-25 00:31

“빗썸이 업계 최고 수준을 넘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국내 2위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이 지난 23일 오후 6시께 발표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빗썸은 “24일부터 원화 예치금에 대한 이용료율(이자율)을 연 2.2%에서 연 4.0%로 높인다”고 공지했다. 제휴 은행인 농협은행에서 지급하는 연 2.0%의 이자에 더해 빗썸이 추가로 연 2.0%를 부담하는 식이다.

업계 안팎에선 예치금 이자율을 둘러싼 출혈경쟁이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다른 거래소들도 전날 빗썸의 이자율 인상 발표가 나온 뒤 부랴부랴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상과 달리 논란은 금세 해소됐다. 빗썸은 23일 오후 11시58분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준수를 위해 추가 검토할 사항이 발견돼 이자율 상향 조정에 관한 안내를 철회하게 됐다”며 기존 공지를 정정했다.

빗썸이 반나절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은 금융당국의 제동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 운용수익보다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암호화폐 업계의 출혈경쟁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는 빗썸이 ‘거래 수수료 전면 무료화’ 정책을 들고나오며 거래소 간 수수료 인하 경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출혈경쟁이 매번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뒷맛이 썩 개운치 않다. 이자율과 수수료율이 거래소업의 본질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거래소의 경쟁력은 △상장 코인의 다양성 △거래소 재무 안정성 △투자 편의성 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자율과 수수료율을 둘러싼 경쟁만 부각되고 있다.

업계에선 현 규제체계에서 거래소 간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예를 들어 미국의 코인베이스는 기관투자가에 특화한 사업모델을 구축했고, 바이낸스는 선물·마진거래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해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국내에선 기관투자가의 암호화폐 투자 및 가상자산을 활용한 파생상품 개발 등이 모두 금지돼 있다.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신탁 허용 등과 관련한 논의도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결국 거래소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수수료율과 이자율뿐이라는 것이다.

출혈경쟁이 아니라 건전한 경쟁을 통해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릴 때다. 업계와 정부, 국회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가상자산 생태계 발전을 위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이용자보호법(1단계 법안)에 이은 ‘업권법’(2단계 법안) 논의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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