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회에 이로운 경쟁

입력 2024-07-24 17:58   수정 2024-07-25 00:28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고 불리는 경쟁이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아니라 주어진 몫을 나누기 위한 다툼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두 항공사가 경쟁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 업체가 대대적인 광고를 해 이전에는 항공 여행을 생각해 보지 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면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쟁 업체의 기존 고객을 빼앗는 데 그친다면 그 기업은 이득을 보겠지만 경쟁 업체는 손해를 본다. 이 경우 한 편의 이익이 곧 다른 편의 손해라 사회 전체로 보면 순이익은 0이라는 뜻에서 제로섬이다.

대부분 경쟁에는 제로섬 게임과 포지티브(positive) 게임적 측면이 섞여 있다. 어떤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가져다주는 것이 전자라면, 경쟁에서 이기려고 노력하는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이 후자다. 이 둘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고정돼 있는지다. 만일 항공 여행을 하려는 사람 수가 고정돼 있다면 어떤 노력을 하건 경쟁은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된다.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의사와 같은 전문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경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원래 면허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도록 허가하는 제도이므로, 애초 자격취득 과정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다. 경쟁이 아니라면 제로섬 게임일 이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오래전부터 주요 전문자격사 시험에 합격 인원을 미리 정해 놓았다. 정부가 면허제도를 제로섬 게임 구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세무사 자격제도를 관장하는 국세청은 최소 합격인원(선발 예정 인원)을 700명 수준으로 정해놨다. 2019년 세무사 1차 시험 응시자는 약 9000명이었다. 응시자 대비 합격자 비율은 8%에 불과하다. 2023년에는 1만4000명가량이 응시했고, 합격자 비율은 5%로 줄어들었다.

합격자는 모든 것을 갖고 탈락자는 모든 것을 잃는 극단적인 제로섬 게임의 경쟁에서 많은 사람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교육과 면허가 결합해 좀 더 복잡하긴 하지만 의사나 변호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의대와 법학전문대학원 정원을 10년 또는 20년 넘게 고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전문자격사 면허가 애초 제로섬 게임으로 운영돼서는 안 되는 종류의 제도라는 사실이다. 능력을 갖춘 모든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할 경우 너무 많은 자격사가 배출돼 과잉 경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인원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정원 제한 아래에서의 자격사 취득을 위한 경쟁이 제로섬 게임인 반면 자격사 간 경쟁은 포지티브 게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면허취득자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자격사들의 능력이 증진되고 소비자는 더 높은 후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주체들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임무다. 불행하게도 정부는 정원 통제를 통해 전문자격사 영역에서 비생산적 경쟁이 일어나도록 만들어놨다. 이 때문에 자격 취득과 관련해서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유발하고 있으며, 자격취득자에게는 공급 제한에 따른 부당한 이득을 허용해 왔다. 아무쪼록 정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를 찾아서 고치려는 노력 이전에 드러나 있는 문제부터 바로잡는 노력을 해주기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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