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포플래닛(K-pop 4 Planet)은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는 기치로 전 세계 K-팝 팬들의 기후 행동을 선도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에 한국 팬뿐 아니라 각국의 다양한 팬들이 참여하고 있다. 10여 명의 고정 멤버가 기후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캠페인을 진행하면 홈페이지,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취지에 동감하는 팬들이 청원에 참여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K-팝 아티스트들이 속한 음반사와 소속사를 대상으로 음반 사재기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나 음원 스트리밍으로 인한 무분별한 전기 소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제는 K-팝 아티스트들이 모델로 활동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기후 및 윤리 행동 촉구로 확장되고 있다.
현대차 공급망을 바꾸다
현대차는 2022년 전기차 아이오닉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BTS(방탄소년단)를 선정했다. BTS 멤버들이 현대차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캐치프레이즈 홍보를 맡았다. 특히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에서는 BTS의 후광에 힘입어 아이오닉의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같은 해,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의 광물 기업 아다로미네랄과 전기차에 필요한 알루미늄 생산과 관련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공급망에 편입했다. 알루미늄을 석탄화력발전을 통해 생산하고, 향후 일부 수력발전을 더하겠다는 것이다. 협약대로 하면 석탄화력으로 만들어지는 알루미늄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게 된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업무협약 내용이 BTS를 통해 홍보해온 친환경 이미지와 전혀 다른 행보이며, 이를 그린워싱이라 보고 현대차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의 BTS 팬클럽 ‘아미(ARMY)’들이 적극 동참했다. 인도네시아 캠페이너들은 현대차 팝업 스토어를 찾아가 항의 액션과 스피치를 반복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K-팝 팬들이 참여한 석탄화력 반대 1만 명 청원을 모아 현대차 측에 이메일로 전달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만남과 메신저로 소통한 결과 온전히 케이팝포플래닛의 행동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차와 아다로미네랄의 협약은 무산됐다. 현대차도 K-팝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점에서 K-팝 팬들이 우려하는 입장을 청취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도 기후 행동의 대상이 됐다. 블랙핑크는 초기부터 글로벌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약했기에 자연스레 명품 브랜드로 관심이 옮겨졌다. 케이팝포플래닛이 명품 브랜드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살펴보니 2021년부터 탄소배출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기후와 관련해 자료를 별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그린워싱을 멈출 것 ▲현재 어떤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에너지믹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것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공급망에서 쓸 것 등 3가지 목표에 대해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명품 브랜드를 타깃으로 할 때는 블랙핑크 팬클럽 블링크(BLINK)와 협력했다.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각국에 흩어진 팬들과도 적극 협력했다. 한국에서는 팬클럽 개념이 모호해졌지만, 외국에서는 트위터 계정에서 해당 나라 언어로 번역해 정보를 전달하는 ‘팬베이스’ 계정이 활발하다. 블링크 팬베이스와 협력해 프랑스,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다양한 국적의 팬베이스와 ‘트럭 액션’을 주최했다. 글로벌 도시인 뉴욕, 파리, 런던, 도쿄, 자카르타 등에서 릴레이 캠페인을 펼침으로써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등 크게 시선을 끌었다.
플라스틱 이슈에도 꾸준한 관심
최근 케이팝포플래닛은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이라는 앨범 캠페인을 다시 한번 전개하고 있다. 랜덤 포토 카드로 중복 구매를 종용하고, 속지는 같되 표지만 바꿔 여러 버전의 앨범을 발매하고, 앨범 구매량이 팬 사인회 참여 기준이 되다 보니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너무 많이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K-팝이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금, 글로벌 기업이 된 엔터사가 다시 격에 맞는 사회적책임을 보여줄 때라는 점에서다.
“미래세대로서 기후 위기 완화 위해 노력”
[인터뷰]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
- 기후 행동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K-팝 아티스트를 응원하면서 사는 앨범 자체가 플라스틱이라 석유화학 제품이고, 또 화석연료로 만들어 기후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2021년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엔터사인 하이브 앞에서 액션을 하면서 기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전기로 돌아가는 스트리밍, 이른바 ‘스밍’에 초점을 맞춰 ‘멜론은 탄소맛’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펼쳤다. 플라스틱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 앨범도 나왔고, 그룹 아일릿의 포토 카드를 생분해되는 재료로 만드는 등 일부 바뀌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엔터사들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껍질뿐인 ESG 경영을 삼가고 앨범 상술도 줄였으면 한다.”
- 기후 철학이 궁금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연평균 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개인이 기후 행동을 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판매자 입장인 기업이 바뀌어야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이 책임감을 갖고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기업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 기업을 타깃으로 캠페인을 통해 그들을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K-팝 팬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빠순이’ 등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별칭이 많았다. 우리가 매개체가 되어 더 많은 활동을 함으로써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도록 편견을 깨고 싶다. 액션을 취하면서 느낀 건 의외로 아시안과 여성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막상 기후 위기로 피해를 입는 집단은 여성과 아시안인데, 그런 목소리가 더욱 반영되도록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은 목표도 있다. 앞으로도 기후 행동을 하면서 지구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미래세대로 살아갈 사람으로서 기후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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