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사망' 숨기고 은행서 예금 9억 가로챈 60대, 징역형

입력 2024-07-28 16:22   수정 2024-07-28 16:24


숨진 형 행세를 하며 망인 명의로 예금청구서를 작성해 금융기관에서 9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인출해 빼돌린 60대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춘천지법 형사2부(김성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와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61)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4월13일 자신의 형 B씨가 숨지자 이틀 뒤 금융기관을 찾았다. 그는 B씨의 도장을 이용해 B씨 명의로 된 예금청구서를 위조한 수법으로 금융기관을 속여 통장에 든 9000만원을 인출했다. A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나흘간 4차례에 걸쳐 총 8억9900여만원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 측은 재판과정에서 "B씨가 생전에 A씨에게 예금을 증여했고, 이를 인출하여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실제로 B씨는 살아생전 자신의 유일한 상속인인 자녀에게 상속 포기를 요구한 데다 B씨가 직접 알려주지 않는 한 A씨가 B씨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알 수 없는 점으로 볼 때 재판부는 A씨 측 항변을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만약 B씨가 생전에 예금채권을 A씨에게 증여하기로 약정하거나 자신의 예금 인출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증여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사망했기 때문에 A씨가 곧바로 망인 명의 예금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지위에 있지는 않다고 봤다.

민법상 망인의 사망으로 위임관계는 종료되면서 대리권이 소멸하기 때문에 B씨의 사망 이후 A씨에게 예금청구서를 작성·행사할 권한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유죄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인 금융기관들이 망인의 사망 사실을 알았다면 법정상속인이 아닌 A씨에게 예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며, A씨도 그러한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망인이 직접 예금인출을 청구하는 것처럼 행세해 돈을 받아낸 것으로 봤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 방법과 피해 금액 등으로 볼 때 죄책이 무거운데도 피해자들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피해 보상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했다는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범행의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면서 대체로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범행 경위에 일부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실제로 6억원은 망인의 세금 납부 등의 용도로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해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징역 3~6년)의 하한을 다소 벗어난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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