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원산지정보원, 예산 1600배 차이나지만…같은 잣대로 평가

입력 2024-07-28 17:51   수정 2024-07-29 01:09

우리나라 공공기관 327곳의 직원은 총 45만165명으로 삼성전자(12만4207명)의 약 4배다. 공공기관의 한 해 예산(지출 규모)은 918조2817억원(약 6642억달러)으로 일본(7003억달러)과 맞먹는다.

어지간한 국가 정부 수준의 인원과 자산을 가진 공공기관이지만 경쟁력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민간 기업과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 만들어진 2007년을 정체의 시작으로 본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에너지, 인프라, 자원,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에 속한 공공기관들을 공운법이란 하나의 틀에 욱여넣어 규제하니 시장경제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획일적 통제에 경쟁력 제자리걸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공운법의 문제점은 평가방식의 획일성이다. 예산이 53억원인 한국원산지정보원과 8조7284억원인 한국전력이 사실상 같은 틀로 평가받는다.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와 서민 전세보증금 반환을 보증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방송 광고를 판매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공기업 산업 진흥 서비스’라는 같은 그룹에 묶여 동일한 잣대를 적용받는다.

2021년까지는 공기업(자체 수입이 총수입의 50% 이상인 공공기관)의 평가 분류가 대형과 중소형 두 개뿐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과 한국철도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른 공기업이 같은 그룹에 묶여 평가받았다.

2018~2022년 한전과 도로공사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각각 37명과 38명으로 14개 시장형 공기업 사망사고자의 81.5%를 차지했다. 업무 특성상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많은 한전과 도로공사는 사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공기업들과 안전관리 평가에서 경쟁해야 하다보니 매년 평가 등급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공공기관 사장은 “업무 성격과 규모가 전혀 다른 기업과 경쟁을 붙이니 공기업 사장은 공공 서비스와 신규 투자를 늘리기보다 ‘무사고’만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무 성격 무시한 채 규제만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정부는 2022년 공기업을 사회간접자본(SOC) 에너지 산업진흥 서비스 등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새 평가 분류는 한전과 발전 자회사, KTX와 SRT 등 모회사와 자회사를 같은 그룹으로 묶어 곳곳에서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을 일으킨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낮게 통제하는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 한다. 반면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 자회사는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아야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모·자회사의 경영평가 경쟁 결과, 지난해 모회사 한전은 두 번째로 낮은 경영평가 등급인 ‘D’를 받았는데 100% 자회사인 서부발전은 두 번째로 높은 ‘A’를 받았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인력 정원은 수년째 58명으로 묶여 있다. 기재부 분석에 따르면 2020년 정부가 세운 계획대로 전문 인력을 201명으로 늘리면 인건비가 1137억원 증가한다. 대신 수익률이 오르는 효과 등을 감안하면 최대 1조70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기재부 스스로도 인건비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걸 알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만 공운법의 예외로 둘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설명이다.

정영효/황정환/이슬기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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