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정책으로 손꼽힌 팁스(TIPS)가 흔들리고 있다. 사업 규모를 급하게 늘리면서 곳곳에서 비효율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28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팁스 선정 기업 A사는 올해 지원받기로 한 사업비의 20%가량이 내년으로 넘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해 팁스에 선정돼 내년에 사업이 끝나는 벤처기업 559곳이 지연 대상이다. A사 대표는 “당초 협약한 금액 기준으로 인건비 등 계획을 짜놨는데 당황스럽다”고 했다.
창업 기업 발굴·투자 실적도 떨어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2년 이후 팁스 운영사로 선정된 기업 추천권 누적 소진율은 78.2%로 이전(2013~2021년) 평균 소진율 87.9%보다 하락했다. 추천할 만한 스타트업을 찾지 못한 투자사가 많았다는 의미다.
예산규모 3년새 2배 불었지만…사업비 지연사태 등 관리 미흡
문제는 프로젝트의 커진 덩치를 관리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자금 지급 지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상 기업들이 해당 내용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중기부는 팁스 운영기관인 한국엔젤투자협회 등에 미리 알렸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따로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 직접 전화해보고서야 지연 사실을 알았다”며 “알려줘야 사업계획도 수정할 것 아니냐”고 했다. 엔젤투자협회 팁스 담당부서의 1인당 과제 수는 2022년 22.4개에서 올해 38.4개로 늘었다.
일부 운영사가 팁스 추천권을 빌미로 과도한 지분을 요구하는 등 부당한 일이 벌어져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운영사의 위법 사항을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팁스 신문고’가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고 했다.
팁스 투자사의 투자 유치 활동 요구에 압박감을 느끼는 창업자도 많다. 팁스 과제 성공 요건 중엔 ‘일정 금액 이상의 후속 투자 유치’가 있다. 전체 성공 팁스 과제 중 후속 투자를 받아 성공한 비중이 71.4%나 된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사들이 IR 활동을 강요하면서 추가 투자를 못 받으면 기존 투자 지분을 재매입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기도 한다”고 했다.
팁스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 수준도 내려갔다. 팁스 스타트업이 내놓는 우수특허 비율이 2018년 12.6%에서 2022년 4.9%까지 낮아진 것이 단적인 예다. 가젤기업(3년 연속 20% 이상 고성장한 기업) 비중 역시 같은 기간 13.3%에서 12.6%로 하락했다.
업계에선 팁스가 단순히 돈을 대는 것을 넘어 기업들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제도로 정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팁스가 한국 기술창업 생태계를 이끌어온 일등 공신인 건 맞다”라면서도 “지금처럼 성공 사례를 복제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Korea)
팁스는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민관 협업 프로젝트다. 민간 투자사가 초기 기술기업에 선투자하면 정부 자금을 매칭(최대 5억원)한다. 최대 7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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