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 대박이야"…요즘 틈만 나면 '옷장' 뒤지는 이유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4-07-29 13:47   수정 2024-07-29 17:35


Z세대 직장인 이채린 씨(26)는 요즘 틈만 나면 엄마 옷장이나 드레스룸을 뒤적인다. 오래 전 엄마가 들던 프라다나 코치, 롱샴 등 오래된 명품 제품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빈티지 명품을 즐겨 드는 분위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오래 전 부모님이나 친척이 들던 명품 가방을 물려 받기도 하고, 없으면 중고 시장을 뒤져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며 “인기 빈티지 제품은 값이 올라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요즘 명품업계에선 중고가 새 제품보다 더 잘 팔린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이 시장을 주도하는 건 20·30대가 대부분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블랙핑크 제니도, 방탄소년단 RM도 중고거래를 하고 빈티지 제품을 착용하곤 한다. MZ세대는 왜 오래된 빈티지 명품에 열광할까.
MZ세대가 오래된 명품을 즐기는 법
온라인 중고 사이트에 ‘빈티지’와 ‘명품 브랜드명’을 조합해 검색하면 사고 판다는 게시글이 수없이 올라와 있다. 초고가 명품이 아니라도 10~20년이 지난 제품이 보관 상태가 우수하면 프라다, 코치 등의 제품도 70만~8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중고시장보다 값은 비싸지만 가품 가능성이 적은 중고 명품 전문숍이나 강남 압구정 일대 전당포를 찾는 이들도 있다. 강남에서 중고명품 매장을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기존엔 연식이 오래된 제품은 샤넬이나 에르메스 등 하이엔드급이 아니면 받지 않았지만 최근엔 프라다, 코치, 심지어 롱샴까지 받아준다”며 “확실히 10년 이상 된 빈티지 제품 중심으로 수요가 폭증한 것이 체감된다. 요즘은 20대 초반 어린 친구들까지 매장을 찾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빈티지 명품 제품들이 5060 세대의 오래된 옷장을 벗어나 시장에 본격 매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트렌드에 민감한 패셔니스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심으로 착용샷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다. 최근 올리비아 로드리고(21), 도브 카메론(28) 등 미국의 20대 가수들이 빈티지 코치 가방을 든 모습이 포착됐다. 틱톡에서는 빈티지 코치가방을 모으거나 리폼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배우 정려원, 가수 강민경 등 패셔니스타들이 빈티지 명품을 입고 방송에 출연하거나 인스타그램에 착용 사진을 올렸다. 제니가 지난해 패션 행사 ‘멧 갈라(Met gala)’에서 입은 샤넬 드레스는 여전히 회자된다. 1990년대 드레스를 본떠 만들어 ‘빈티지 드레스’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제니는 샤넬, 디올 등 오래전 출시된 빈티지 명품 제품을 스타일리쉬하게 착용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보다 앞서 빈티지 명품 시장이 활성화됐던 일본에서도 ‘제니가 즐겨찾는 곳’, ‘제니가 사랑하는 빈티지샵’ 등의 문구로 가게 홍보를 하곤 한다.
빈티지 명품 '붐',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처럼 레트로 바람과 함께 ‘반짝 인기’에 그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빈티지 명품 붐은 에르메스, 샤넬, 디올 등 하이엔드 급에서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프라다, 미우미우, 셀린느, 코치, 롱샴 등 매스티지(대중 명품) 급으로 퍼져나가는 추세다.

온라인 중고 사이트에 프라다와 롱샴 나일론 제품 가방 구입 희망 게시글을 올린 대학생 박유나 씨(24)는 “오래된 명품 가방을 구입해 인형, 키링 등을 활용해 가방을 꾸미는 '백꾸'로 다채로운 장식을 하는 게 유행”이라며 “일반 국내 브랜드 나일론 패딩 숄더백들도 10만원이 훌쩍 넘는데 운이 좋으면 비슷한 가격대에 롱샴 가방을, 돈을 더 주면 30만원대에도 상태 좋은 프라다 가방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중고 명품 시장은 450억 유로(약 65조원) 규모를 기록했다. 2017년과 비교하면 6년 만에 125% 성장했다. 같은 기간 명품 시장이 43% 증가한 데 비해 오히려 중고 시장의 성장세가 더 가파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보고서에서 명품 중고 시장 성장세가 앞으로도 연간 20~30%를 기록할 것이며, 중고 거래 시장에서 MZ세대가 주도적으로 소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따르면 MZ세대 중 35%가 중고 명품을 구입한 적이 있고, 26%는 명품을 대여한 적이 있다. 보고서는 “명품 브랜드들은 MZ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통해 MZ세대의 충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MZ세대가 빈티지 명품에 꽂힌 것은 아무래도 현실적인 이유가 첫 손에 꼽힌다. 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인 이들은 비교적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 소비를 중시한다. 중고품을 보는 인식도 달라졌다. MZ세대에게 중고거래란 남이 쓰던 물건을 주워 쓰는 게 아니라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 위한 재미있는 행위'이자 트렌디함을 뽐낼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중고명품 시장,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중고명품 시장은 기존에는 개인 빈티지 매장이나 명품 매장 인근 중고거래 샵, 전당포 등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최근엔 대기업들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를 중고명품 시장이 커지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다.

네이버의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은 중고 명품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중고 명품 ‘시크’를 운영하는 ‘팹’을 인수해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선 것이 대표적. 북미 중고거래 플랫폼 ‘포시마크’와 일본 ‘소다’를 인수했고, 스페인과 태국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2021년 중고나라를 인수한 사모펀드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하며 중고 시장에 진출했다. 신세계그룹도 벤처캐피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통해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더현대서울에 스니커즈 리셀 매장 브그즈트랩(BGZT LAB)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명품 업체도 중고 시장 성장을 반기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다. 구찌의 모기업 케링그룹과 버버리, 스텔라 매카트니는 고객이 보유한 자사 제품을 사들여 재판매하거나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에 직접 보내는 협업에 착수했다. 케링은 2020년부터 중고 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과 손잡고 온라인에서 구찌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케링과 버버리, 스텔라 매카트니는 중고 명품 플랫폼에 올라오는 자사 제품의 진위를 가려주는 인증 사업도 벌이고 있다. 자사 제품이 다양한 경로로 시장에 풀리게 해 타깃 고객층을 확대함으로써 수익을 늘리려는 전략이다.

아예 빈티지 제품을 재해석한 업사이클링 상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LVMH 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빠투(PATOU)는 지난 5월 첫번째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Patou Upcycling 캡슐 컬렉션'을 파리 현지에서 공개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키테시 마틴이 설립한 업사이클링 주얼리 브랜드 키테시 마틴 스튜디오와 협업해 빠투의 재고 제품에 패브릭 스트랩과 메탈릭 장식을 달아 티셔츠, 탱크톱, 모자 등 키테시 마틴만의 스타일로 재치 있게 재해석한 컬렉션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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