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서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을 세분하면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해당 행위가 업무와 관련성이 있을 것 △업무상의 적정범위를 벗어날 것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킬 것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정의는 다른 나라의 입법례와 비교하여도 상당히 모호하고 광범위한 편이어서, 직장 내에서 괴롭힘 신고가 접수된 경우 이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는지 그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구체적인 사례의 다양한 사실관계를 고려하여 내려지지만, 현장에서 문제되는 몇 가지 경우를 법원 판례에 근거해 살펴보겠습니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나요?
“부하직원들이 저를 너무나 괴롭게 하는데, 이것도 괴롭힘 아닌가요?”라는 상급자의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급자가 부하직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지위의 우위가 인정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례에서는 지위의 상하 관계가 뒤바뀌었더라도 관계의 우위를 인정받아 괴롭힘으로 판단된 경우도 있습니다.
▷울산지방법원 2022년 9월 22일 판결 (2021가합14843)
피해자는 운영총괄 책임자로, 행위자는 운영보조업무 반장입니다. 비록 피해자가 행위자의 직상급자였으나, 법원은 연령, 직장 내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관계의 우위를 인정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행위자가 피해자를 배제한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업무 현황을 공유하거나, 피해자가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만을 표현한 점,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업무에서 배제시키려는 행동을 한 점으로 괴롭힘을 인정했습니다.
▷춘천지방법원 2015년 11월 20일 판결 (2015구합4646)
피해자는 여성 육군 중대장, 행위자는 남성 육군 주임원사로 피해자보다 20세 연상입니다. 행위자가 피해자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여 괴롭힘으로 판단된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성별, 연령, 직장 내 영향력을 바탕으로 관계의 우위를 인정하였고, 행위자의 성적 발언이 피해자에게 큰 정신적 고통을 유발했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에서 단순한 직급 관계 외에도 연령, 성별, 직장 내 영향력 등의 다양한 요소가 고려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지속적인 애정 고백도 괴롭힘에 해당되나요?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가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하므로 단순히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집요한 구애 행위를 하면서 이를 업무와 연관 짓거나 업무 수행을 빙자하여 행하는 경우, 이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음 사례들은 이러한 판단 기준을 보여줍니다.
▷수원지방법원 2023년 2월 9일 판결 (2022가합10067)
이 사건은 기혼 남성인 본부장이 미혼 여성 하급자에게 지속적으로 구애를 시도한 경우입니다. 본부장은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고백했으나, 피해자는 매번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본부장은 피해자에게 꽃바구니를 보내는 등 집요한 구애 행위를 계속했으며, 이러한 행동은 약 8개월간 지속되었습니다. 게다가 본부장은 피해자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이메일을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단순한 사적 갈등을 넘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고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괴롭힘으로 판결되었습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21년 5월 27일 판결 (2019가합39997)
이 사건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지속적으로 이성 교제를 요구하고, 이에 대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괴롭힘을 지속한 경우입니다. 행위자는 피해자보다 10세 연상의 상급자로, 피해자가 여러 차례 이성 교제 제안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피해자에게 화를 내거나, 연락이 닿을 때까지 연락을 지속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모습이 촬영된 CCTV 화면을 자주 확인하고, 휴대전화기로 영상을 촬영하여 보관한 후, 이를 업무용 단체 카카오톡 방에 공유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순수한 사적 갈등 또는 사적 관계가 아니라 업무 수행을 빙자한 행위라면, 상급자의 집요한 구애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성적 굴욕감'이 핵심 요소로 판단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정신적 고통'을 중심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괴롭힘의 범위가 더 광범위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업무상 질책이었고 괴롭힐 의도가 없었는데도 괴롭힘이 될 수 있나요?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에 고의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행위자가 피해자를 괴롭힐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즉, 괴롭힘의 성립 여부는 행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피해자가 경험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서울행정법원 2023년 2월 24일 선고 2022구합70612 판결에서는 "피해자들의 업무 미숙이나 실수가 중하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허용되는 언행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볼 수 없다. 업무상 지시나 지적의 경우에도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정서적 간극이 크며, 상급자의 인식과 무관하게 하급자는 충분히 괴롭힘으로 느낄 수 있으므로, 상급자가 의도가 없었다 하여 이러한 행동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판결은 피해자에게 업무상 잘못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즉, 괴롭힘의 의도가 없더라도 과도한 표현이나 감정적 발언은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폭언과 욕설은 고용노동부 매뉴얼에서 직장 내 언어적 괴롭힘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발언이 행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큽니다. 행위의 상습성과 반복성은 정도와 양정의 문제일 뿐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성립 요건과는 관계가 없으며, 그 폭언과 욕설의 정도가 심하다면 일회적 행동이었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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