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래 "더 야성적이고 더 투박한 것을 만들고 싶어요"

입력 2024-07-29 18:17   수정 2024-07-30 01:16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산업혁명 시대 발전소로 ‘런던의 굴뚝’ 역할을 하던 이곳은 2000년 개관 직후 21세기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장이 됐다. 문을 열자마자 테이트 모던이 단숨에 세계적 명소가 된 이유가 있다. 미술관 입구이자, 로비이자, 전시장인 ‘터빈 홀’ 때문이다.

템스강변 뱅크사이드에서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3300㎡, 높이 35m에 달하는 터빈 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공간의 위엄뿐만 아니다. 이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작가들의 면면도 위압감을 준다.

개막 당시 초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아이 두, 아이 언두, 아이 리두(I Do, I Undo, I Redo)’ 전시를 시작으로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올라푸르 엘리아손, 1억 개의 해바라기 씨앗 쌓기를 시도한 아이웨이웨이, 아니시 카푸어, 티노 세갈, 슈퍼플렉스, 아니카 이 등 22명이 거쳐 갔다. 1년에 단 한 명,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현대 예술가에게만 주어지는 ‘꿈의 무대’인 셈이다.

올가을 터빈 홀을 장식하는 건 이미래 작가(사진)다. 한국인으로 최초, 터빈 홀 전시 역사상 최연소다. 섬세함과 기괴함이 교차하고, 욕망과 공포가 중첩되는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네덜란드와 한국,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해온 이 작가를 지난달 스위스 바젤에서 만났다.

이 작가의 작품은 예쁘지 않다. 아니다. 기괴하고 너덜거리고, 몹시 섬뜩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인간의 내장을 꺼내 확대한 것 같은 이미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 말리는 듯한 설치물, 당장 액체가 쏟아져 흘러내릴 것 같은 심해 생물 같은 작품들이다. 그는 공장용 호스, 철사, 시멘트, 실리콘 등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재료를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는 조형물로 만드는 데 능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아르세날레에 전시된 ‘끝없는 집: 구멍과 물방울’(2022)은 당시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로부터 “용의 내장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직 앳돼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성 작가는 “난 언제나 더 야성적이고, 더 거대하고, 더 투박한 것들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관객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데 천재적인 연출력을 갖고 있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영화들, 인간의 욕망에 관해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시를 써온 김언희 시인의 시 등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틀을 깨는 작품들,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들-예를 들어 고어 포르노 같은 것-에 매료됐죠. 약간 불쾌한 감정이 주는 것들, 뭔가 강하게 욕망하는데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커미션: 이미래’라는 이름으로 열릴 그의 전시는 오는 10월 8일부터 내년 3월 16일까지 약 5개월간 이어진다. 테이트 모던 터빈 홀을 어떤 것으로 채울까? 잠시 눈을 감았던 그는 한 문장으로 전했다. “공공장소에서 잘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할 거예요.”

김보라 기자

아트바젤 현장에서 만난 이미래 작가와의 대화는 29일 발간된 ‘아르떼’ 매거진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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