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진정한 K팝 세계화를 위한 조건

입력 2024-07-29 17:51   수정 2024-07-30 00:48

K팝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은 구문이 된 지 오래다. 세계 각국에 말춤 열풍을 몰고온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온 지 12년이 넘었다. 방탄소년단(BTS)이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거머쥔 지도 벌써 4년이 흘렀다. 국내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진입 소식은 이제 으레 있는 일이다.

이 같은 인기가 미국에서 서브컬처(비주류 문화)에 그칠 것이란 의구심도 있었지만 지난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도심 한복판에서 한국 가수 비비의 ‘밤양갱’ 떼창을 듣는 순간 무너졌다. 수만 명의 관객은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이라며 한국 사람도 발음하기 어려운 가사를 따라 불렀다. 이날 ‘케이콘(KCON) LA 2024’ 관객 대다수가 히스패닉, 백인, 흑인 등 비(非)아시아인이었다.
K팝으로 빛난 한국 소프트파워
K팝이 미국 Z세대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미국 대중문화와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K팝 특유의 팬덤 문화는 아티스트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으로 다가왔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객은 “무대에 오르기 전 술을 마시거나 약을 하고 자기 세계에 취해 있는 미국 가수들에게 질렸다”며 “K팝 가수들은 항상 팬의 안부를 묻고, 팬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K팝 열풍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좋아하는 가수가 즐겨 쓴다는 한국 화장품을 구입하고, 좋아하는 배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한식을 찾는다. 한국 문화는 자연스럽게 트렌디하고 ‘힙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K팝이 국가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렸다는 외신들의 분석은 과장이 아니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미국의 한 대중음악 평론가는 “대중 사이에서 K팝에 대한 피로도가 올라간 것도 사실”이라며 “관련 행사를 갈 때마다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관(官) 주도 생각 버려야
이 같은 열풍의 토대를 쌓은 건 기업들이다. 12년 전부터 미국에서 케이콘을 개최하며 저변을 넓힌 CJ ENM,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한 SM·JYP·하이브·YG 등 엔터테인먼트사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당장의 수익을 좇아 해외로 나가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K팝을 세계화하기 위해 밑바닥에서부터 꾸준히 밀어붙였다.

K팝 열풍이 거세지자 정부와 정치권의 ‘숟가락 얹기’가 시작됐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보고 아티스트를 활용한 사례는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기회만 되면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해외 공연에서 의전 받으려는 모습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K팝이 전 세계 공통의 일반명사로 자리 잡은 뒤 정부 공식 자료에 온갖 단어에 K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음악’이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음악 장르로 K팝을 좋아하는 해외 팬 입장에서 툭하면 정부가 나서는 지금의 모습이 자칫 국수적 색을 입히는 일이 될 수 있다.

K팝의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다. 트렌드를 따라 사이클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기가 시들해져도 정부의 지원 부족 때문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은 불모지였던 시장을 개척한 기업을 그림자처럼 지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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