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만난 한 기아 주주의 성토다. 기아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보다 7.7% 증가한 53조7808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사상 처음 100조원 벽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2분기엔 ‘13.2%’라는 놀라운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기아 역대 사상 최고치일 뿐만 아니라 돈 잘 벌기로 유명한 테슬라(2분기 6.3%)와 메르세데스벤츠(1분기 10.8%)는 물론 세계 판매 1위인 도요타(1분기 10.4%)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를 모두 뛰어넘었다. 기아의 수익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아 주가는 맥을 못 추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인도법인 기업공개(IPO) 소식이 전해지며 연중 최고가(13만5000원)를 찍은 지난달 19일과 비교해 29일 주가는 16% 가까이 빠졌다. 통상 실적이 좋을 것으로 기대되면 주가도 오르기 마련인데 기아는 2분기 실적 발표가 있던 지난 26일에도 오히려 2.5%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투자자가 기아를 외면하는 이유로 장기적인 성장 비전의 부재를 꼽는다. 기아의 올해 매출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비싼 차를 잘 팔아서다. 미미하던 하이브리드카 비중이 2분기 14.3%(플러그인 포함)로 뛰면서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기아의 레저용차량(RV) 비중은 7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의 환골탈태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도약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1944년 경성정공에서 시작한 기아의 역사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이듬해 현대차그룹의 일원이 됐다. 천덕꾸러기 신세이던 기아가 비싼 차를 잘 파는 기업으로 도약한 건 임직원들의 절치부심 덕분이다.
하지만 기아가 넘어야 할 산의 골은 깊기만 하다. 글로벌 소형차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판매량이 줄고 있다. 기아의 2분기 판매량은 79만5183대(국내 13만8150대, 해외 65만7033대)로 작년 2분기보다 1.6% 감소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중국 제외)은 2022년 5.2%에서 지난해 4.9%, 올 상반기엔 4.8%로 떨어졌다. 중국까지 포함하면 점유율은 3.7%에 불과하다.
미래차 개발과 관련해 기아만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차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이나 미래차 출시를 위한 준비 내용을 투자자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자동차 시장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아가 현재 성적에 만족하고 장기 비전을 보여주지 않으면 투자자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오늘’을 기아가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