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정권마다 경영평가 배점이 크게 바뀐다는 점이다. 각 정부가 국정과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공공기관을 활용해서다. 이 과정에서 실현 불가능하거나 이전 정권과 양립 불가능한 새 정권 평가 항목이 덧대지며 경영평가 지표가 누더기가 됐다고 공공기관들은 하소연한다. 각 공공기관이 매년 조달품의 5%와 3%를 여성 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만든 제품을 쓰도록 한 ‘상생·협력 평가 항목’이 대표적 사례다. 사회적 책임을 중시한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한 것인데 공공기관은 15년 넘게 매년 머리를 싸맨다. 국내 여성·사회적 기업 제품 시장 규모가 수백억원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철도, 도로 등 전문 기자재를 조(兆) 단위로 사들이는 대형 공기업은 애초부터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영평가 항목은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4점), 직원 복리후생(4점), 혁신계획 성과(3점) 등의 배점이 높은 게 특징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항목의 배점을 낮추는 대신 영업이익률(2점), 노동생산성(3점), 조직·인적 자원관리(2.5점) 등 경영 효율성과 관련한 점수 비중을 높였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담당자는 “같은 그룹의 공공기관은 상대평가를 받는 데다 소수점 한 자리 차이로 등급이 갈리기 때문에 배점이 1점 바뀌는 건 엄청난 차이”라고 말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정책 목표에 맞춰 새로운 평가 항목을 추가하더라도 이전 정권이 늘려놓은 항목을 없애지는 않는다. 대신 배점만 줄인 채 유지한다. 공공기관이 한없이 늘어나는 경영평가 항목에 허덕이는 이유다.
이전 정권의 평가 항목에 새 정권의 항목을 덧대는 ‘누더기 경영평가’는 양립할 수 없는 평가 항목을 양산해 공공기관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상생협력과 복리후생처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항목과 영업이익률, 노동생산성 같은 효율성 항목이 배점만 바뀐 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늘어나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 사장은 “무료 급식소에 돈도 많이 벌라고 요구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는 새로운 평가 항목을 추가하는 동시에 기존 항목을 합쳐 평가 항목이 끝없이 늘어나는 것을 교묘히 감춘다. 이전 정부에서 별도 평가 항목이던 ‘리더십’과 ‘전략기획’을 새 정부가 ‘리더십 및 전략기획’으로 통합하는 식이다. 그런데도 올해 대형 공기업의 경영평가 세부 항목은 100개가 넘는다.
현행 공공기관운영법 경영평가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잘하는 공공기관이 더 잘하도록 이끄는 동기부여를 못 한다는 점이다. 올해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은 2024년 총인건비 예산을 지난해의 2.5% 이내에서 늘리도록 제한했다. 그런데 해당 공공기관의 평균 임금이 해당 산업 평균 임금의 110% 이상이거나 공공기관 평균의 120% 이상이면 인건비 증액분을 2% 이내로 깎았다.
매년 우수한 평가 등급을 받아 연봉 수준이 높아진 공공기관은 연봉 인상률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한승준 서울여대 사회과학대 학장은 ‘공공기관 개혁’ 보고서를 통해 “정부 편의적인 평가 항목 신설에 따른 공공기관의 인력과 예산 낭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부 권장 정책을 실행하느라 조직 본연의 업무 목표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환/정영효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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