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기자가 만난 외교안보 전문가는 국내 대북 첩보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의 비밀요원 신상이 해외에 유출된 사건의 심각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군방첩사령부 등 방첩당국은 최근 국군정보사에서 일하는 군무원 A씨가 개인 노트북에 있던 비밀요원 신상 정보 등이 포함된 기밀 자료를 외부로 유출한 정황을 발견했다. 군 내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비밀요원 리스트가 해외에 유출됐다면 우리 군 해외 정보망이 재기불능의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국방부 중앙군사법원은 이날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공개된 정보요원 명단은 국가 정보기관의 특급 기밀 사안이지만, 군검찰은 간첩죄가 아닌 군사기밀누설 등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만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무원이 중국 국적자에게 정보를 넘긴 것으로 밝혀질 경우 형법 제98조 간첩죄의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행위, 또는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행위’를 간첩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적국은 6·25전쟁을 했던 ‘북한’을 지칭한다. 1953년 제정된 이 조항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어 북한이 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결국 법원에서 이번 사안이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방첩당국의 우려다. 간첩죄의 유죄 판결 시 적용할 수 있는 높은 형량(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2018년 정보사 공작팀장이 군사 기밀을 중국·일본 등 해외에 팔아넘겼는데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아 징역 4년에 그쳤다”며 “국가 기밀을 팔아넘긴 범죄를 낮은 형량으로 다스리면 비슷한 범죄가 재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내 정치권이 하루빨리 간첩죄 조항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대 국회에선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등 일부 의원이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취지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일(요원 정보 유출)이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다면 당연히 간첩죄나 그 이상의 죄로 중형에 처한다”며 간첩죄 개정을 독려하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 법 개정이 이뤄질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간첩법 개정안이 네 건 발의됐고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까지 갔지만, 모두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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