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습당한 우유 포퓰리즘

입력 2024-07-30 17:36   수정 2024-07-31 06:14

우유는 서양에서 건너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 선조들이 우유를 마신 기록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나온다. 9세기에 편찬된 일본 책 ‘신찬성씨록’을 보면 7세기 중엽 백제 사람 복상이 일본에 건너와 왕에게 우유를 짜 올렸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 우왕 때는 국가기관으로 ‘우유소’라는 목장을 설치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우유는 상류층만 독점하던 귀한 식품이었다. 1902년 대한제국의 농상공부 기사로 일하던 프랑스인 쇼트가 홀스타인 젖소 11마리를 가져와 목장을 열면서 대중화가 시작됐다.

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1997년 31.5㎏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해 지난해에는 26년 만에 26㎏ 밑으로 떨어졌다. 원유(原乳) 생산량은 209만t(2020년 기준)으로 이 중 186만t만 소비된 채 23만t이 남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우유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장 원리와 동떨어진 가격 결정 시스템 탓이다. 정부가 구제역 파동이 일어난 2013년 생산비 연동제를 도입함에 따라 낙농가의 생산비 증감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원유 가격을 결정했다. 생산비가 오를수록 원유값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낙농가는 굳이 생산비를 절감하고 혁신할 필요가 없었다. 낙농산업의 경쟁력 추락은 필연적이었다.

이런 틈을 외국산 멸균 우유가 파고들었다. 올해 상반기 멸균 우유 수입량(2만6700t)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나 늘었다. 수입량 1위인 폴란드산 멸균 우유의 L당 평균 수입단가는 0.8달러. 관세(6.7%)를 적용한 국내 도착 가격은 1200원 수준으로 국산 흰 우유의 절반 안팎에 불과하다.

낙농가와 우유업계가 올해 원윳값을 동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우유 소비가 줄고 고물가 상황인 점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급증하는 외국산 수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영유아가 감소하는 가운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 유럽연합(EU)과 미국산 유제품에 관세가 사라지면 업계가 공멸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우유 포퓰리즘’의 참담한 후과다. 거대 야당이 강행하는 양곡관리법 등 ‘쌀 포퓰리즘’이 초래할 결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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