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운용본부라도 공운법서 떼내자"

입력 2024-07-30 17:53   수정 2024-07-31 03:32


한국가스공사는 전국 155곳의 정압관리소(고압 천연가스를 수요자에게 맞는 압력으로 낮추는 관리소)를 623명의 관리인력이 운영한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정압관리소를 무인화한 것과 대비된다. 국내 발전 공기업이 운영하는 화력발전소의 인력도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200~300명 정도로 민간 기업의 발전소보다 2.5배 많다. 한 공기업 사장은 “가스공사, 발전 자회사가 민간 기업이었다면 당장 투자자와 거래은행으로부터 무인화나 군살 빼기를 요구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63년 정부투자기관예산회계법부터 시작해 2007년 만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이르기까지 60년 넘게 공공기관을 감시·통제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살리지도, 방만함을 뿌리 뽑지도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는 공공기관의 감독 권한을 주무 부처에 나눠주고, 경영활동에 경쟁 등 시장경제 요소를 확대해야 공공기관을 살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원을 경험한 전직 관료는 “공운법을 폐지하고, 공공기관의 실정에 맞는 평가 항목을 주무 부처의 관련 법률이나 설립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료 출신 공기업 사장은 “주무 부처가 감독 권한과 관리 책임을 지고, 기재부는 경영평가의 최종 승인권을 갖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에너지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한 전직 관료는 “공공기관이 방만한 가장 큰 원인은 국가 보증”이라며 “부실 사업에 투자하는데도 ‘국가가 보증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으니 은행이 사업성을 따지지 않고 자금을 댄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처럼 신규 투자자금을 금융회사의 여신심사를 받아 조달하도록 하면 공공기관이 사업계획을 더욱 치밀하게 짤 수밖에 없어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전직 관료는 “정부 입장에서도 은행의 여신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공공기관의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인 만큼 정치권이나 노조 등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100여 가지에 달하는 경영평가 세부 항목도 대폭 줄여 민간 기업의 평가 지표와 비슷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관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비계량 지표를 없애는 대신 매출과 수익성, 성장성 등 경영성과를 위주로 평가하면 공공기관도 평가 점수를 높이려는 대신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란 조언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만이라도 공운법의 통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투자공사(KIC)처럼 기타 공공기관으로 빼거나 KBS, EBS와 같이 공운법 적용 예외 기관으로 지정해주면 기금운용본부가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주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공기업 사장은 “우리나라 정부는 공기업을 시장의 통제에 맡기려는 시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이제는 경영평가 결과가 연봉을 좌우하는 ‘평가급’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성과급을 줄 때”라고 말했다.

정영효/황정환/이슬기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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