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보복을 다짐했고, 자국 영토를 유린당한 이란 역시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레바논 베이르투 근교에선 이스라엘의 정밀 공습으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자 작전 고문 푸아드 슈크르가 사망했다. 중동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일주일 간 내림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급격히 반등했다.
성명에 따르면 하니예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숙소에서 급습을 당해 경호원과 함께 살해됐다. 하니예는 이란이 '저항의 축'이라 부르는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 등의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30일 열린 페제시키안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이란을 방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하니예 사망과 관련해 논평을 거부했다. 정부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아미차이 엘리야후 이스라엘 문화유산부 장관은 소셜미디어 X에 "오물로부터 세상을 청소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이란에서 살해 됐다는 보도를 봤다"고 짧게 언급했다.
올해 62세인 하니예는 가자지구 출신으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를 주도하는 등 2017년까지 하마스를 이끌었다. 파타(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갈등을 빚고 결별한 뒤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어왔고, 2017년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야히야 신와르에게 넘기고 하마스 정치국장으로서 튀르키예와 카타르에서 생활해왔다. 가자전쟁 발발 후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의 휴전 협상에 하마스의 대표로 참여했던 하니예가 살해되면서 그동안 추진해온 협상도 당분간 중단될 전망이다.
하니예 암살과 별개로 같은날 이뤄진 이스라엘의 레바논 베이루트 공습으로 헤즈볼라 지휘관 등이 사망했다. 헤즈볼라가 골란고원의 축구장을 로켓으로 공격해 어린이 등 12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복이다.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사진)가 베이루트 근교에 은신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이스라엘군은 드론으로 해당 건물을 정밀 폭격했다. 이스라엘군은 "푸아드는 미사일과, 장거리 로켓, 무인기(드론) 등 헤즈볼라의 최첨단 무기를 담당했다"며 "1985년 헤즈볼라에 합류한 이후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수많은 테러 공격을 계획했다"고 부연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이 예상되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중동의 무장단체들도 벌떼같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다. 사미 아부 주흐리 하마스 대변인은 "우리는 알쿠드스(예루살렘의 아랍어 지명)를 해방하기 위한 전면전을 전개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를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됐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계열 강경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도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그들은 '저항의 축' 전체와 전면전을 위해 상황을 몰아가고 있다"며 "하니예를 암살하고 이란의 주권을 공격한 죄악을 후회하게 될 것" 경고했다. 하마스의 연대 무장조직 팔레스타인 이슬라믹지하드(PIJ)도 이날 성명을 통해 "한계선을 어기는 적의 범죄를 끝장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탈을 일삼는 그들(이스라엘)에 하마스 형제들과 손잡고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분쟁 격화 우려로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근월물은 지난 3거래일 동안 4.5% 하락한 뒤 이날 반등해 배럴당 80달러에 가깝게 거래되고 있다. 전날 배럴당 74.73달러에 마감했던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9월 인도분 선물도 76달러 선으로 반등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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