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B 씨는 ‘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 사건이 터진 것을 보고 국내 한 명품 플랫폼에서 구매했던 물건의 결제를 취소했다. 상품을 주문했는데도 배송이 지연되던 찰나에 ‘티메프’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불안했다. B 씨는 “상품을 산 업체에서 물건도 못 받고 환불도 되지 않는 피해를 입을까 걱정돼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 취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번 티메프 사태가 업계에 미치는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수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커머스 불신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이커머스 업체의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이번과 같은 피해가 또다시 발생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이커머스에서 상품을 구매했다가 피해를 입을까 겁난다”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로 불리는 명품 플랫폼의 경우도 소비자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이 싸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 플랫폼의 재무상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B 씨가 결제를 취소한 것도 이들 명품 플랫폼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의 경우 각각 약 240억원, 650억원, 780억원의 미처리 결손금이 남아 있다.
이 중에서도 발란은 가장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 총계가 자산 총계보다 많은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발란의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발란의 계속기업 존속 능력에 대해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을 정도다.
물론 다른 이커머스도 안심하고 물건을 구매하긴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건 마찬가지다.
나름 업계에서 덩치가 큰 편에 속하는 11번가와 컬리조차도 수년간 매년 1000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실정이다.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11번가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오랜 기간 사옥으로 사용했던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를 나와 경기도 광명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컬리도 서울 송파 물류센터에서 철수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커머스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신세계그룹이 2021년 3조4000억원에 인수한 G마켓도 적자의 늪에 빠졌다.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롯데온은 2020년 출범 후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손실을 기록하며 그룹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최근에는 희망퇴직도 받기 시작했다. 쿠팡과 네이버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이커머스 포비아’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자 이커머스 업체들에서 피해를 입지 않는 방법도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카드 할부 결제다. 결제금액이 20만원 이상이고 3개월 이상 분할해 납부하기로 한 신용카드 회원의 경우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할부계약 철회 및 항변권을 행사힐 수 있다. 이번 티메프 사태에서 여행 상품 등 고가의 상품을 할부 결제한 일부 소비자들이 신속하게 환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다수 이커머스의 사업구조를 보면 답이 나온다. 대부분이 티메프와 비슷한 오픈마켓 형태의 수익 모델을 구축했다.
플랫폼에 판매자들을 입점시켜 자기 물건을 판매하게 하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너도나도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자연히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할인 티켓 발급과 같은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티메프가 이번에 무너진 이유 중 하나도 타사와 경쟁하기 위해 유독 할인 쿠폰을 더 많이 남발했던 점이 꼽힌다. 이로 인해 상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티메프를 비롯한 많은 이커머스가 조 단위 거래액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실적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자 이유가 빤하지만 전략을 수정하는 것도 어렵다. 쿠팡과 네이버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저가 공세까지 날로 거세지는 추세다. 이들에게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출혈 마케팅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오픈마켓에 입점해 물건을 파는 ‘셀러(판매자)’들 사이에서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이번 사태가 터진 이후 여러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카페에서는 ‘오픈마켓 리스크’가 확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티메프 판매 미정산금 규모가 1조2000억원으로 추산되는 만큼 정산을 받지 못한 판매자들의 줄도산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자영업자는 “오픈마켓을 통한 판로 확장을 계획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며 “기존에 입점해 있는 이커머스도 계속 입점을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이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한 만큼 전문가들 및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티메프 사태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급속히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티메프 사태를 통해 ‘신뢰’라는 단어가 이커머스 업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며 “재무상태가 양호하고 자금력을 갖춘 이커머스로 고객들이 대거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그는 쿠팡의 성장세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바라봤다. 이번에 야기된 이커머스의 대금 정산 지연은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오픈마켓 사업방식의 구조에서 나타났다.
쿠팡은 다르다. 물건을 판매자에게 직접 매입해 소비자에게 되파는 이른바 ‘직매입’ 비중이 90%가 넘는다. 소비자나 셀러 입장에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 부각되며 고객들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네이버도 빼놓을 수 없다.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네이버를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았다. 최근 펴낸 보고서를 통해 임 애널리스트는 “만약 큐텐이 부도가 나지 않더라도 이번 사태로 곤욕을 치른 셀러들이 티몬과 위메프에서 이탈하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라며 “오픈마켓을 이용하던 많은 셀러와 소비자들이 자금력도 충분하고 오픈마켓 점유율(약 40%)이 가장 높은 네이버로 유입되면서 시장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신세계와 롯데 역시 이번 사태의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커머스의 경우 소비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티메프 사태를 기점으로 신세계와 롯데의 이커머스 사업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커머스 시장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의 예상은 저마다 다르다. 앞으로 이커머스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 분명한 것은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이커머스들은 소비자들과 셀러들의 외면을 받으며 서서히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연이어 티메프의 전철을 뒤따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 교수는 “수많은 업체가 난립하며 경쟁하던 이커머스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이커머스들이 대거 나타날 것”이라고 점쳤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할 것으로도 예상되는데, 이들을 거둬들일 주인이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커머스 사업이 더 이상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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