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이 정상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2분기 전체 HBM 매출이 전 분기 대비 50% 이상 증가한 데다 최신 제품인 HBM3E 생산도 임박해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몸값이 천정부지로 뛴 HBM 사업이 정상화하는 것은 반도체 왕좌를 되찾는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는 뜻이다. 일반 D램 가격도 큰 폭으로 오른 만큼 올해와 내년 실적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온 2018년 3분기(영업이익 17조5700억원)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1일 열린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 HBM3E 8단 제품 공급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HBM3E 공급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고객사를 확보했거나 주요 고객사의 품질 검증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고객사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엔비디아 납품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HBM은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인데, 세계 AI가속기 시장의 90%가량을 엔비디아가 장악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기 위해 품질 검증 작업을 거치고 있다.
김 부사장은 “HBM3E 8단 제품은 지난 분기 초 양산 램프업(생산량 확대) 준비와 함께 고객사 평가를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하반기 HBM 증설과 함께 HBM3E 판매 비중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HBM3E가 2~4개월 안에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쟁사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부터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해왔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납품을 계기로 HBM 주도권 탈환에 본격 시동을 건다는 계획이다. 일단 내년 HBM 생산량을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HBM3E를 4분기부터 복수의 고객사 일정에 맞춰 공급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하반기 HBM 매출은 상반기보다 3.5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하반기에도 HBM, DDR5, SSD 등 서버용 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수익성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수익성을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확고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반 D램은 ‘공급 부족’을 걱정할 만큼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업계의 생산능력 투자가 HBM에 집중되면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 시장 1위(점유율 46.8%)이자 낸드플래시 시장 1위(32.4%) 업체다.
온디바이스AI(내장형 AI)가 적용된 스마트폰과 PC가 잇따라 나오는 것도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3분기 D램과 낸드 가격이 각각 최대 13%, 10%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이 HBM에 집중하는 데다 생산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삼성전자가 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를 가장 많이 볼 것으로 관측된다.
고부가가치 제품과 범용의 쌍끌이 호황에 힘입어 삼성전자의 실적 회복세는 한층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 증권가에선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44% 늘어난 13조2552억원(증권사 전망치 평균)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분기 영업이익은 14조2013억원으로 전망됐다.
박의명/김채연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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