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사유화·손실 국유화…'대마불사' 흑역사[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⑧]

입력 2024-08-04 06:00   수정 2024-08-05 14:13

[커버스토리: 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

“현재의 비즈니스가 중단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약간만 도와주시면 피해 복구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발생 3주 만인 지난 7월 30일 국회에 출석한 구영배 대표가 판매자들 피해를 정산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도와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가 국회에 출석해 내뱉은 변명의 핵심은 모든 일이 ‘업계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큐텐이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위해 부실한 이커머스 기업들을 잇달아 사들여 무리하게 거래액을 부풀려오다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고 보고 있다.

자금 마련 방법은 무자본 M&A였다. 자기자본 없이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티몬과 위메프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덩치를 키웠고 물류 자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방법을 꾀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티메프 사태로 피해를 입은 건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물건을 팔았지만 티메프로부터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한 입점 업체들, 중간에서 결제를 연결하던 PG사, 환불을 떠안아야 하는 카드사까지 연쇄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구 대표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인터넷 사업이 가진 특성상 금방 죽다가 올라오기도 한다며 잘 설득하면 기회가 다시 열릴 수 있다”고 했다. 구 대표가 설득하겠다는 대상은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도와달라’고 말한 것으로 유추해 보면 설득의 대상은 금융당국일 확률이 높다.
대우조선부터 태영까지…손실의 국유화

티몬과 위메프가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것 또한 ‘손실의 국유화’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티몬과 위메프는 입장문을 통해 입점 업체의 ‘연쇄 줄도산’이 우려되는 만큼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구조조정 펀드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두 업체의 회생절차가 받아들여질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주관하는 ‘기업구조혁신펀드’를 활용한 자금조달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구조혁신펀드는 민간투자자의 재원으로 구조조정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정책 자금을 마중물로 민간의 구조조정 운용사와 투자자를 모집해 자금이 바닥난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미 국가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티메프 사태 대응을 위해 최소 5600억원을 수혈하기로 했다. 직접 지원이 아닌 저금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금융위원회 신용보증기금, 기업은행,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섰다. 간접 지원이지만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일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부실한 민간 기업에 혈세가 투입되는 ‘손실의 국유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21년간 12조원 혈세 들어간 대우조선해양 흑역사
티메프 사태처럼 기업의 위기가 시스템과 시장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손실을 떠안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른바 대마불사. 덩치가 큰 기업이 파산할 경우 연쇄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혈세를 투입해서라도 일단 살리고 보는 것이다.

국민 혈세 12조원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이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지난 21년 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부침을 겪었던 대우조선해양은 한때 부채비율이 500%를 웃돌았다. 대우조선해양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였다.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칠 충격, 조선업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역대 정부가 결단을 못 내린 탓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 찾기는 난항의 연속이었다. 수차례 매각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08년 한화그룹이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됐지만 금융위기로 무산됐다. KDB산업은행은 2009년, 2012년, 2014년에도 매각을 시도했지만 ‘부실 공룡’인 대형 조선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없었다.

KDB산업은행은 고비 때마다 대우조선해양에 산소 호흡기를 대줬다. 업계에선 지난 21년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 자금이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한화그룹이 2조원을 들여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으로 재탄생했다.

대우조선해양뿐 아니라 대우그룹의 패망은 대마불사의 함정에 빠졌던 한국 기업사의 상징적 장면이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자금난을 알고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기업을 키워놓으면 정부가 부도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사업을 계속 확장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엄청난 공적자금을 빨아들이며 그 손실은 국유화됐다.
PF에 94조원 수혈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역시 국가가 돈을 투입해 틀어막고 있는 자본시장의 ‘뇌관’이다. 아파트를 짓거나 레고랜드처럼 큰 사업을 진행할 때는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때 부동산 사업장은 PF를 통해 돈을 빌린다.

담보는 오직 미래 수익성이다. 사업을 하려는 시행사의 자기자본은 단 3%. 나머지 97%는 건설사의 보증을 통해 빚으로 일으켜 충당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과 달리 주요 선진국에서는 부동산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이 30~40% 수준으로 높다. 하지만 한국은 PF 사업장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파장이 건설사와 금융사에 머물지 않는다. 얽히고설킨 보증의 연쇄 고리를 타고 금융 시스템과 사회 전반으로 퍼진다.

대표적인 장면은 레고랜드 사태였다. 이후 PF 부실은 둔촌주공, 태영건설 부도위기 등으로 이어졌고 이때마다 정부가 나섰다. 2022년 강원도가 레고랜드 지급 보증을 거부하면서 자본시장의 근간인 ‘신뢰’가 흔들렸고 이로 인해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며 돈줄이 말랐다.

그 여파는 7000억원의 금융권 PF 자금이 투입됐던 ‘둔촌주공’까지 미쳤다. 둔촌주공 PF가 발행했던 채권의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 채권을 새로 발행하려고 했는데 이를 사겠다는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서 보증을 선 시공사가 사업비 7000억원을 대신 갚기로 했다. 하지만 만기를 하루 앞두고 채권 재발행에 성공하며 사업이 재개됐다.

하지만 중소형 사업장의 자금줄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은행이 나섰다. 한국은행은 2022년 부동산 사업 대출 비중이 높아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던 증권사에 6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증권사가 갖고 있는 채권을 직접 사주는 방식인데 3개월이 지나면 이를 증권사가 다시 사가야 하는 조건을 달았다. 석 달간 대출을 해주는 셈이었다.

지난 5월에는 무려 ‘94조원’을 투입하겠다는 PF 연착륙 대책이 나왔다. 직접적인 보증에만 30조원이 투입된다. 정상 사업장에는 공공과 민간의 자금을 투입하고 부실 사업장은 경매와 공매 등을 통해 정리한다는 것이 대책의 주 내용이다. 민간 시장 참여자들이 사업성 평가와 정리를 주도하고 정부는 사업성 평가의 가이드라인 제시, 규제 완화, 시장 감독 등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PF에 공적자금 94조원이 투입될 정도로 난리인데 책임을 진 건설사는 한 곳도 없다.

부도 위기에 몰렸던 태영건설 역시 워크아웃을 통해 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다. 태영건설은 1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진행했는데 워크아웃 사례로는 보기 드물게 오너가 경영권을 잃지 않았다. 최대주주가 채권단보다 더 많은 규모로 자본 확충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59곳의 PF 사업장 가운데 토지매입 단계의 브리지론 사업장은 대부분 정리되고 본PF 사업장 대부분은 사업을 이어간다. 다만 워크아웃 동안에는 태영건설 주식에 대한 경영권 포기, 의결권 위임, 감자 및 주식처분 동의 등을 약속한 만큼 경영권 행사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간 사업장에서 발생한 부실을 공기업이 떠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기재부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태영건설을 비롯한 건설업계를 정상화하는 데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일시적으로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부동산 PF 사업장을 LH가 매입해 직접 시행하거나 다른 시행사·건설사에 매각하는 식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LH에 위험성이 높은 PF 정상화 작업을 맡긴 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태영건설 사업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하청업체에 대출 만기 연장과 금리 감면 등 혜택을 제공하는 대책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가 2011년 저축은행 위기부터 최근까지 반복적으로 한국 경제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황순주 KDI 금융혁신연구팀장은 “현재 국토교통부, 금융당국, 신용평가사, HUG, 부동산신탁사 등 어느 곳도 모든 사업장에 대해 체계적인 재무 및 사업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있다”며 “좋은 정책을 마련하려면 문제를 발견하는 ‘눈’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모두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눈’이 없어서 부실이 터진 이후에야 비로소 땜질식 처방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PF를 통해 거둬들인 막대한 이익은 시행사와 건설사 그리고 오너들이 차지한다. 하지만 PF가 위기에 빠지면 이를 구하기 위해 공적인 자금이 동원된다. 이 자금은 국민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각종 규제를 해제한다. 이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과 어우러져 일시적인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만들어낸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뒤늦게 매수 대열에 올라탄다. 이후 집값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집값이 하락하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현재 일각에서 영끌 시즌2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며, 부동산 관련 회사들의 탐욕으로 빚어진 PF 사태의 수습을 결과적으로 집 없는 국민들에게 떠안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마불사.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국유화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주범의 논리가 아닐까.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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