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단 괜찮지만 그건 좀…"
안동문화관광단지 내 유교랜드에서 만난 40대 최모씨는 단지에 들어간 혈세 액수를 듣더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강공원을 제외한 여의도 절반 정도 수준인 1.6㎢에 달하는 이 부지에 2002년부터 내년까지 총사업비 5680억원이 들어갑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지방비 1522억원, 자체 1110억원이 들어가 총 2600억원이 훌쩍 넘는 세금이 이미 투입됐습니다. 그중 약 500억원이 투입돼 핵심 사업으로 여겨지는 안동 유교랜드는 최근 매년 수십억 원의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20년간 '세금 먹는 하마' 오명을 쓴 안동문화관광단지. 근황이 알려진 지 오래입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지난달 30일 서울서 왕복 500㎞를 질주해 이곳을 찾아 근황을 살펴봤습니다.
방학 성수기인데
서울에서 약 250㎞를 질주해 찾은 이곳. 조선시대 사대문 같은 입구를 지나도 4㎞를 달려야 단지 내부가 나옵니다. 안동문화관광단지는 위치가 문제라는 지적이 그간 많이 제기돼왔습니다. 안동역이나 안동터미널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14㎞를 와야 합니다.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도 1시간이나 소요되고, 택시를 타면 택시비만 2만원이 나옵니다. 안동을 찾은 외지인이 이곳을 찾기에도 쉽지 않고, 시내에서도 7㎞ 정도 떨어져 있어 내지인이 오기에도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어렵게 도착한 안동문화관광단지는 내년이 완공 예정이지만, '허허벌판'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입구를 지나고 한참을 가서야 큰 풀밭 너머로 이곳의 가장 핵심 랜드마크인 유교랜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도로 옆 물레방아, 유교랜드 앞 분수대 등 수요 없는 조경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지는 넓고, 관리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유지보수에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안동시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서 조회한 결과, 지금까지 이곳의 각종 물품·공사·용역 계약금액만 50억원을 넘었습니다. '절제미'를 강조한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님이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것 같습니다.
겨우 찾은 유교랜드는 유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랍니다. 지하 2층, 층고가 높은 지상 3층 건물에 들어간 공사금액은 총 430억원. 원래 입장료는 9000원이지만, 행사 기간 중이라 2000원을 할인받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혈누탐팀이 이곳을 찾은 날은 주중이긴 했지만, 아이들 방학인데다 휴가 성수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한산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방학이라 그나마 사람이 있는 편"이라면서 "주중에는 하루 400명, 주말에는 하루 1000명 정도 방문한다"고 밝혔습니다. 개관 초 하루 40명이 온 때와 비교하면 큰 도약이지만, 여전히 적자폭을 메우기에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곳은 선비정원, 소년·청년·중년·노년·참 선비촌 등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학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학부모 김모씨는 "남편이 가자고 해서 기대 없이 왔는데 은근히 괜찮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자녀도 "엄마·아빠와 시원하게 놀 수 있어서 재밌다"고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이처럼 "예상외로 괜찮다"는 긍정적인 후기는 온라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선 보지 못했지만, 커플끼리 왔다는 후기도 간혹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색안경을 쓰고 간 혈누탐팀도 생각보다 재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줄 서는 '핫플'은
하지만 '과하다'는 인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디지털'로 채우려 해 "이게 과연 유교 문화를 배우는 데 적절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교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인 '충'을 배우기 위한 테마 존의 말을 타며 적군에게 활을 쏘는 게임,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관직 익히기 게임', 타자기에 원하는 문구를 치면 북 스크린에 해당 문구를 북소리와 함께 띄워주는 신문고, 각 테마 존을 설명하기 위해 설치된 움직이는 TV 등이 그 사례입니다.
스마트폰에서 증강현실(AR) 혹은 가상 모드로 유교랜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앱도 출시해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02년에는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이 산학협력단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유교랜드를 메타버스화하는 데 국비 25억원을 포함해 예산 50억원을 들였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랜드 내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트램펄린, 이른바 '방방이'였습니다. 유교랜드 어느 곳에서도 '줄서기'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에어바운스 놀이터'는 예외였습니다. 한 학부모는 "다른 곳은 다 동행하며 일일이 설명을 읽으며 아이한테 알려줘야 하는데, 이곳은 그런 게 필요 없어 숨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은 풀밭, 옆은 꽃밭
유교랜드를 나온 후 단지 내를 한 바퀴 둘러보니 사실상 '유령관광단지'에 가까웠습니다. 동식물원인 주토피움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스파랜드'도 들여올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됐다고 합니다. 유교랜드 앞 부지는 풀밭, 옆 부지는 꽃밭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풀밭은 겨울에는 '눈썰매 페스티벌' 공간으로 사용될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산책로나 작은 공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다.상황이 이렇게 돼서일까요. 민간자본사업은 당초 2984억원 예정이었으나 702억원에 그치고 있습니다. 민자로 들어선 호텔이 두 곳이 있었지만,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인근 카페나 베이커리가 사람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팬데믹 때 바닥을 친 유교랜드와 주토피움은 2022년 반등했다가 2023년 다시 하락했습니다. 최근 3년간 유교랜드는 동식물원보다도 이용객 수가 적었습니다. 수익은 줄고 비용은 늘면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적자가 1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만성적자 탓에 2023년 3~9월까지 휴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직 결산 자료가 안 나왔지만, 작년에 절반을 휴관한 것을 감안하면 적자 폭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령관광단지' 탈피하려면
안동시는 인구가 16만명에 그쳐 자체적인 방문 수요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경북 인근에는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 유명 관광지가 많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입니다.
많은 시민들은 '이름이 문제'라는 지적도 해왔습니다. 30대 여성 하모씨는 "이름만 바꿔도 반감도 좀 덜할 것 같다. 실제 와보면 시원하고 아이들이랑 즐길 거리가 꽤 있는데 '유교랜드' 하면 막 오고 싶어지는 느낌은 안 주지 않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같은 후기가 많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안동과 유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이름 자체가 오히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선 바이럴 효과를 누리기에 차별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애매모호한 주변 조경도 개선 대상입니다. 그냥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유교랜드에 의존적으로 관광단지를 운영해야 하는데, 역부족으로 보이거니와 노는 부지가 너무 많습니다. 현재 노는 부지들도 공원이라고 말할 수준도 아니고, 꽃밭이 있다고는 하지만 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을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현재로는 관리비만 계속 나가게 생겼습니다.
시장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게 한 담당자의 설명입니다.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키즈카페 같은 거주 인근 시설들이 너무 잘 발달하다 보니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유사 시설이 인기를 끌기가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며 "콘텐츠를 수시로 바꿔야 유인물이 생기는데, 그러면 예산이 발생하고 입장료를 올려야 하는 문제도 같이 생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다만 관계자들은 유교랜드가 휴관 전 월 4000~6000명 수준이던 방문객이 재개관 후 지난해 12월 1만4119명으로 급상승하면서 기대감도 생기고 있답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몰려들게 할 수 있는 ▲콘텐츠 개선 ▲지역 연계 ▲SNS 홍보 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유교랜드 맞은편에 위치한 안동레이크 골프클럽 이용객 수가 점진적으로 올라 2019년 이후 내내 유교랜드를 앞서며 9만명 안팎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위치 등 다른 문제가 아니라 유인물의 부족이라는 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출산으로 지방에서 이러한 에듀테인먼트 공간을 찾는 일은 앞으로 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관광지를 찾을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며 "인근 관광지나 교육청과의 연계, SNS 공모전 등 바이럴 효과를 통해 유입 인구를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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