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한국을 ‘세계 5대 우주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설립한 우주항공청이 인재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우주 탐사와 기술 개발 업무를 지휘할 핵심 보직 대부분이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거론되는 인사들도 공무원 또는 연구소 직원 일색이다.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꾸려 정부 조직의 혁신적 롤 모델이 되겠다는 방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민간에 비해 뒤떨어진 처우와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입지 한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1일 과학계에 따르면 우주청이 개청 3개월을 맞았지만 우주항공임무본부 산하 핵심 4대 보직인 수송(발사체)·인공위성·탐사·항공 부문장이 아직도 공석이다. 부문장을 뒷받침하며 실무를 책임질 과장급 보직 인선도 속도가 더디다.
이날까지 임명된 과장급 8명 중 6명이 공무원 또는 연구소 출신이다. 박순영 재사용발사체·김응현 인공위성임무설계·류동영 달착륙선 프로그램장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출신이다. 강현우 우주과학탐사임무설계 프로그램장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왔다. 우주과학탐사임무보증·위성임무보증 프로그램장 2개 보직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신 공무원이 맡았다. 민간에선 단 2명이 합류했다.
부문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도 연구소 일색이다. 수송부문장과 위성부문장에는 각각 박재성 항우연 소형발사체연구부장과 김진희 항우연 다목적위성6호사업단장이 거론된다. 우주과학탐사부문장은 조경석 전 천문연 부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항공혁신부문장만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올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우주청이 ‘항우연·천문연의 경남 사천 지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분위기다. 우주청은 “개청한 지 아직 100일도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선 납득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우주항공청 설립 추진 태스크포스(TF)가 과기정통부 산하에 구성된 게 2년 전인 2022년 9월이기 때문이다.
우주청의 주요 임무를 살펴보면 2032년 달 탐사 2단계 사업(달 착륙선 개발)에 착수하고, 상용 발사 시장 진입을 위해 차세대발사체와 재사용발사체를 개발해야 한다. 화성과 소행성 등 심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로드맵 수립,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달 거주지 건설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참여 확대, 우주산업 클러스터 3각(대전·전남·경남) 체제 구축 등 할 일이 쌓여 있다. 윤영빈 우주청장이 핵심 임무로 내세운 민간 우주 스타트업 발굴 및 생태계 조성도 밑그림이 나와야 하지만 인사가 계속 미뤄지는 탓에 아직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민간 인재 모시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데는 낮은 연봉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부문장 연봉은 1억4000만원으로 공직자 중 최고 수준이지만 민간 기업 임원보다는 터무니없이 낮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격차는 더 커진다. NASA 연구원은 3억~4억원을 받는 사례가 많다. 스페이스X는 석사급 초봉이 40만달러(약 5억4000만원)다. 대학 전공과 출신에 따른 우주·항공업계의 알력 다툼도 민간 전문가의 우주청 입성을 막고 있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의 한 교수는 “다양한 배경과 스펙을 갖춘 인사로 채용 풀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제2의 스페이스X로 부상한 로켓랩의 피터 벡 최고경영자(CEO)도 독학으로 우주 분야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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