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야기하는 교통사고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시청역 참사'의 사고 원인이 결국 68세 운전자의 운전 조작 미숙으로 결론 났고,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정치권이 선진국의 모델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서라도 대책 마련을 보다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1일 밤 9명의 사망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수사해온 경찰은 사고 한 달 만에 68세 가해 운전자의 운전 조작 미숙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은 이 운전자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액셀)을 밟았던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당시 피의자가 신었던 오른쪽 신발 바닥에서 확인된 정형 문양이 액셀과 상호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경찰의 수사 발표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에는 인천에서 또 고령 운전자의 운전 조작 미숙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남동구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1t(톤) 화물차가 정차 중이던 1톤 화물차를 추돌, 이 사고로 부딪힌 차 주변에 있던 가로수 정비 작업자 3명 중 2명이 숨지는 사고였다. 이 사고의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착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 소식에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시청역 인근 직장인인 이모씨는 "앞으로 당연히 고령 운전자발(發) 사고가 늘면 늘지, 줄진 않을 것 같다"며 "이제는 길 걷다 들이받힐까 무서울 지경"이라고 했다. 여의도 인근 직장인인 박모씨는 "미디어 노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급발진 사고라고 하면 차 결함보다는 고령 운전자가 먼저 떠올려진다"고 했다.
이런 시민들의 불안감은 온라인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달 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워 보이는 고령의 남성이 부축을 받아 운전석에 오르는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운전을 한다고?", "저 동네 안 사는 게 천운인가", "저러다 큰 사고 나겠다", "너무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향후 65세 이상 고령인구와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 비율은 각각 2030년 1306만명·25.5%, 2035년 1529만명·30.1%, 2040년 1724만명·34.4%인 증가세로 예측됐다. 이 가운데 2040년에는 65세 이상 고령 면허 소지자가 전체 고령인구의 76.3%인 1316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2025년 고령 면허 소지자를 498만명, 전체 고령인구의 47.0%로 추계한 데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예상치다.
고령 운전자 수 증가에 비례해 이들이 야기하는 교통사고 비율 또한 증가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면허소지자 1만명당,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제1 가해자로 낸 교통사고는 79.3건으로 20세 이하(120.8건) 다음으로 높았다. 하지만 고령 운전자 사고로 인한 1만명당 사망자 수는 1.8명으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조사처는 "고령자가 유발하는 교통사고의 심각도(치사율)가 상대적으로 높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고령 운전자에 따른 국민적 우려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의 면허 갱신 주기를 3년으로 하고, 갱신 시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을 의무화했다. 또 각 지자체는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할 경우, 10만원 이상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지자체의 반납률이 2%대를 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고령자의 운전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제한하는 건 큰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분명히 있다. 대안으로 떠오른 '조건부 면허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고령 운전자의 '운전 적격성 평가' 체계를 강화하는 게 선진국들의 추세인 것으로 확인된다. 미국은 고령 운전자 관리를 위해 대부분의 주(州)에서 면허 갱신 조건에 '의료진 평가'를 포함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80세 이상의 면허 갱신 주기를 2년으로 하고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한국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탑재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안전장치는 브레이크와 액셀을 헷갈려 밟을 경우 사고를 막아주는 오조작 방지 장치다. 정지 시 차량 전방과 후방에 있는 장애물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1∼1.5m 앞에 둔 상태에서는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 미만 속도로 부딪히도록 가속을 억제한다. 차내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 주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표시된다.
한국에서도 일본을 따라가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22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자동차 급가속 억제 장치'를 장착하거나, 장착된 자동차를 구매하는 경우 그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해 고령 운전자의 급가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방지하도록 하는 교통안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고령 운전자 사고 예방에 효과적인 안전장치를 장착한 자동차를 구매할 경우 비용 일부를 지원하도록 하는 교통안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면허 반납 제도 활성화, 치매인지선별검사(CIST) 및 적성검사 등 제도 개선,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 여러 제도를 융합해 활성화해야 실제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운전면허제도의 보편적인 원칙은 '운전 능력에 따른 차등 허용'"이라며 "고령자 운전 적격성 평가 또한 이 원칙에 따라 운전허용 범위를 차등 적용하기 위한 과정으로 설계·운용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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