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3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특별조치법’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됐다. 전날 법안을 상정한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24시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제 종료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했지만, 여당 내에서도 “현금 지원에 반대만 하다가 다음 선거도 지는 것 아니냐”며 동요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 포퓰리즘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평가다.
민주당이 정부·여당의 강한 반대에도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현금 살포 공약이 지난 총선 승리에 작지 않게 기여했다는 내부 평가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이 폐기되더라도 정치적으로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이 깔렸다. 당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총선 당시 혹시 정부·여당에서 민주당 안보다 많은 40만원, 50만원 현금 지급안을 내놓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며 “2020년 총선 때 문재인 정부가 지급한 코로나 지원금처럼 윤석열 정부가 현금을 뿌렸다면 이번 총선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의원은 “지역구를 돌아보면 은근히 (지원금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법안 자체에 포퓰리즘 성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그래도 현금을 살포하는 법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며 필리버스터를 강행했지만 표를 얻기 위한 현금 살포 유혹이 국민의힘에까지 전이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22대 국회 들어 이뤄진 7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중 여당에서 반대 의견이 나온 것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유일하다.
이 같은 기류에는 현금 지원 반대가 4월 총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장 2026년 지방선거 때 현금 살포 없이 선거를 치르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감세만으로는 애초에 내는 세금이 적은 서민층의 표를 얻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시행에 필요한 재원을 최대 17조9471억원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기준 국가채무는 1126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는 법률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금 말씀드린다”며 “법률안이 이송되면 재의 요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노경목/도병욱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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