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21)는 ‘그 사건’ 이후 죄인이 된 마음으로 살았다. 2022년 6월 한국여자오픈 1라운드에서 자신의 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경기를 그대로 진행한 ‘오구(誤球) 플레이’ 사건이다. 뒤늦게 자진 신고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당시 대한골프협회(K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윤이나에게 3년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후 징계는 1년6개월로 줄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윤이나가 다시 우승 재킷을 입는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매 대회, 매 라운드를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만이 사죄의 마음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던 윤이나가 복귀 후 첫 승을 거두며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윤이나는 4일 제주 블랙스톤G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 최종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 합계 14언더파 274타를 적어낸 윤이나는 방신실, 강채연, 박혜준 등 공동 2위 그룹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 직후 눈물을 쏟은 윤이나는 “저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우승이라 기쁘다”며 “저의 잘못으로 많은 분들을 실망하게 했는데, 많은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이겨낸 뒤 한 우승이라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국내 개막전인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에서 복귀전을 치른 뒤 시즌 첫 번째 우승이다. 징계를 받기 전인 2022년 7월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에서 생애 첫 우승을 신고한 그는 2년1개월 만에 통산 2승째를 올렸다. 이번 시즌 준우승 3회, 3위 1회 등 여러 차례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던 그는 우승상금 1억8000만원을 더해 상금 랭킹을 2위(7억3143만원)로 끌어올렸다. 대상 포인트 순위도 4위에서 2위(315점)가 됐다.
이날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윤이나는 2타를 줄여 리더보드 최상단을 지켰다. 시즌 초 고민이었던 퍼팅이 이날만큼은 마치 자석처럼 홀을 찾아 빨려 들어갔다. 특히 8번홀(파5)에서 3.6m 거리의 버디퍼트를 떨어뜨린 그는 2위권과 격차를 5타로 벌리며 일찌감치 우승을 예고했다. 후반 들어 13번홀(파3)에서 한 타를 잃고 공동 2위 그룹의 추격을 허용했지만, 순위표 가장 높은 자리를 지키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윤이나는 1년9개월이라는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시 최고의 선수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일단 포기하지 않은 ‘끈기’가 지금의 윤이나를 있게 했다. 징계로 한동안 KLPGA투어 무대를 뛸 수 없음을 알고도 프로 골퍼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징계 기간 미국 소규모 투어 대회에 출전하며 경기 감각을 유지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에 몰두했다. 국내에서는 적극 도움을 준 서산수CC를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았다.
두 번째는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이다. 윤이나는 데뷔 시즌 때부터 300야드를 넘나드는 화끈한 장타로 주목받았다. 화려한 미모도 시선을 끌었다.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윤이나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징계 복귀 후 폭발적인 관심과 그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에도 윤이나가 흔들리지 않은 것도 높은 집중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이나도 “많은 관심과 팬들의 응원이 부담되진 않는다”며 “오히려 플레이할 때 더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고, 독서로 잡생각을 없애는 루틴화된 멘탈 관리가 집중력의 근원이다.
세 번째는 ‘성장욕’이다. 윤이나는 ‘장타 여왕’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올 시즌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장타’보다 ‘정확도’에 집중한 이유다. 윤이나의 측근은 “(윤)이나 프로는 징계 기간, 특히 복귀를 앞두고 쇼트게임과 퍼팅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며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가 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귀띔했다.
제주=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