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북한의 '임계미만 전쟁' 전략

입력 2024-08-04 17:43   수정 2024-08-05 00:23

지난 1월 북한 지도자가 남북한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6월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자와는 잘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불길한 조짐들이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핵무기를 갖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핵무기 개발엔 미국과 일본의 동의가 필요한데, 우리 정치 상황은 두 우방의 동의를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에선 북한에 우호적인 정권이 세 차례 들어섰고 앞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아주 높다. 북한, 러시아, 중국 같은 전체주의 진영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큰 나라가 핵무장하도록 돕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으로선 비합리적이다. 전 정권이 반일 감정을 고취하면서 군사적으로도 적대적 태도를 보인 터라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엔 악몽이다. 전체주의 세력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설 여지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핵무기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실은 미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우리와 공유하지 않았다. 한국 군대나 정보기관에 제공된 정보들은 곧바로 북한으로 새 나갔다. 이번 국군정보사령부 기밀 유출 사건은 이 사실을 괴롭게 일깨워줬다.

다행히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쓸 수는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실은 전면전이 벌어지는 순간 미군의 대응으로 북한 정권은 무너진다. 북한으로선 미군의 대응을 부르지 않는 ‘임계미만(under threshold) 전쟁’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전략가들이 걱정한 것은 북한군이 우리 영토의 일부를 기습적으로 점령하고 이내 휴전 협상을 제안하는 전략이었다. 2018년의 ‘9·19 남북 군사합의’에선 북한의 그런 의도가 읽힌다.

북한이 인천 지역을 노린다는 점에 대해선 거의 모든 전문가가 동의한다. 북한군이 침공하기 쉬운 데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런 사정을 반영해 전 정권은 서둘러 한강 하구 해도를 작성해서 북한에 넘겼다. 그리고 “66년 만에 한강 하구 뱃길이 열렸다”고 선전했다.

또 하나는 철원이다. ‘9·19 합의에 따라 이 지역 화살머리 고지에서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이 고지는 본래 중공군 작전 지역이어서 북한군 유해가 나올 리 없는데, 굳이 이곳을 골랐다. 실제로 나온 유해는 모두 중공군이었다. 그리고 12m 폭의 도로를 냈다. 이 일엔 따로 도로를 낼 필요가 없었으니, 그곳 초소(GP)는 이미 보급로가 있었다. 반면 북한군 전차 종대가 내려올 수 있는 이 도로는 발굴지를 멀리 우회했다. 철원은 6·25전쟁 초기에 북한군 주력 105땅크려단이 남하한 도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엔 제2땅굴이 있고 이 지역 우리 초소는 9·19 합의에 따라 헐렸다. 이런 점들은 북한군의 조공(助攻)이 철원을 향할 것임을 가리킨다.

북한은 이 두 지역을 기습적으로 점령한 다음 휴전을 제의할 것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북한에 호의적인 인물에게 중재를 요청할 것이다. 국내에선 종북 세력이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고 맞장구를 치고, 그런 상황에서 핵무기를 가진 북한군과 싸워서 잃은 영토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과연 우리 사회가 모을 수 있을까?

이처럼 위중한 상항에 대처하려면 정부가 필요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의 ‘임계미만 전쟁’ 전략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일어 시민들이 그런 위협을 알고 자연스럽게 심적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 위험을 으레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이 제기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음미할 만하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이 9·19 합의가 무슨 뜻을 지녔으며 어떻게 우리 안보를 해쳤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시민들의 그런 깨달음 위에서만 굳은 안보가 세워질 수 있다.

한강 하구의 해도를 서둘러 제작해 북한에 넘기고 북한 전차 부대가 침공할 전술 도로를 만들어놨다는 사실을 시민이 알도록 하는 것은 국방의 강화만이 아니라 정국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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