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시장을 강타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미술시장에도 드리우고 있다. 세계 미술 수도인 미국 뉴욕에서는 업력 20년 이상의 중견 갤러리들이 지난 1년 새 줄줄이 문을 닫았고, 유럽의 세계적인 갤러리들에는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여기에 미국 실물경기 침체 우려와 자산시장 폭락까지 겹쳐 국내 미술시장도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21~2022년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은 세계 미술시장은 2023년(650억달러) 전년 대비 총매출이 4% 감소(아트바젤 UBS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하며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선 호황기의 여파로 아트페어 등 미술 관련 행사는 전보다 되레 늘었다. 매출은 급감했는데 부담할 비용은 커진 것이다.
호황기에 규모를 키우고 지점을 늘린 갤러리들의 타격은 더 컸다. 미술계 관계자는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한 갤러리업계 특성상 아트페어 참가를 포기하는 등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러는 사이 손실이 누적되고 시장 전망이 계속 악화해 이를 견디지 못한 갤러리들이 폐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곳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유명 갤러리들도 예외는 아니다. 페이스갤러리에서는 고위직들이 짐을 쌌다. 최근 글로벌 및 운영 담당 부사장을 비롯해 주요 보직 인사 3명이 일을 그만뒀다. 데이비드즈워너는 신사업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곳은 웹 개발자 등 온라인 관련 신사업에 투입한 인력 10명을 이달 초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인력의 3%에 해당하는 규모다. 화이트큐브는 지난달 말 경비원 38명을 해고했다.
화랑가에도 찬바람이 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2021년 598개이던 갤러리 수는 2022년 831개, 2023년 895개로 늘었다. 지난 몇 년 새 미술시장에 뛰어든 사람이 급증했다는 얘기다. 이 중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중·소규모 갤러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매사와 대형 갤러리도 살림살이를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국내 대형 갤러리는 서구권 갤러리와 비교해 공격적인 투자를 지양하기 때문에 폐업까지 하는 곳이 많지 않겠지만, 대신 긴축과 감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미술시장 불황은 앞으로 더 심해지고 미술 관련 일자리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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