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경기 침체 공포로 5일 코스피지수가 장중 10% 넘게 떨어지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패닉셀’이 글로벌 증시의 자금 이탈로 번지는 모양새다. 증권가(街)에선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심리적 위축으로 인한 낙폭 과대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진정세를 지켜본 뒤 비중확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날 코스피 지수의 하락폭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규모는 최근 경제지표를 반영하더라도 과도한 수준"이라며 "최근 서울외환시장에서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던 만큼 투매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장중 10% 넘게 폭락한 가운데 코스피와 코스닥시장 모두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국내 증시에서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코로나19 팬데믹 폭락장이 나타난 2020년 3월19일 이후 4년5개월여 만이다. 일본 증시와 대만 증시도 각각 장중 10%대와 7%대 폭락하는 등 아시아증시가 일제히 파랗게 질렸다.
박 센터장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 문제는 미국 발 경기 침체 우려인데 정작 발표된 경제지표를 보면 신용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증시 유동성도 양호한 편이어서 시장이 우려하는 리세션(recession·경기침체)과는 거리가 멀다"며 "심지어 금리인하까지 예고된 상황 속에서 폭락이라 현재로선 코스피 밴드 예상이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센터장은 "이날 코스피 하락은 미국 내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진 점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본격화 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주가 수준은 당연히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으로 낙폭이 과도해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있으나 주가가 단기 급락하는 과정에선 급하게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황승택 하나증권 센터장도 "리세션 우려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겹친 '패닉셀'이 급락장의 원인"이라며 "다만 리세션 우려의 경우 지난 주말에 발표된 고용지표가 쇼크를 촉발했지만 지표를 악화시켰을 뿐 하락의 원인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변동성이 큰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지난주 경제지표 발표 이후 제조업 위축에 실업률까지 상승하면서 경기 침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에 과도하게 나왔다"며 "그동안 미국과 일본 증시가 너무 좋았던 것까지 반영하면서 시장이 더 크게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코스피지수가 2500선 밑으로 내려가면서 밴드 예상은 무의미하고 당분간 조그만 단초에도 변동성이 크게 오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 경기 침체 같은 매크로(거시경제) 변수보단 엔비디아 등 그동안 '고점론'이 불거졌던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의 영향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엔비디아 등이 과도하게 오른 상황에서 가뜩이나 불안했던 투자심리가 한 순 간에 꺾였다는 얘기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센터장은 "미 경기 침체 우려는 외형에 불과하고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관련주들에 대한 '거품론'이 이번 폭락 장세의 본질에 가깝다"며 "그동안 엔비디아 주가가 글로벌 매크로 지표를 다 무시하고 올랐던 것처럼, 현재 나오는 지표들을 다 무시하고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는 28일 엔비디아 2분기 실적 발표 전까지는 의미 있는 반등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블랙웰' 설계 결함 등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확인한 뒤에 시장이 서서히 방향성을 잡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증권가 센터장들은 당장 저가 매수에 뛰어들기 보다는 하락 장세가 진정된 뒤 금리인하 수혜주를 중심으로 대응할 것을 조언했다.
박 센터장은 "단기 급락장 후 회복 국면에선 실적 좋은 종목들이 빨리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실적이 좋은 반도체 종목을 중심으로 대응하거나 금리인하기에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헬스케어, 제약바이오에 관심을 둘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도 "새로운 경제지표가 등장하면 경기 침체 과도한 우려가 서서히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소비재, 헬스케어 등 금리인하 수혜주를 중심으로 대응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다만 황 센터장은 "현재로선 관망하는 수밖에 없고 손절매도 지금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손절매에 나서더라도 기술적 반등이라도 나온 후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