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사람은 사귀는 게 아니라 얻는 것이다

입력 2024-08-06 16:35   수정 2024-08-06 16:36


아버지와 겸상하고 숟가락을 들 때 집 전화벨이 울렸다. 결혼해 한집에서 살 때다. 거래처 대리 전화였다. 받자마자 그는 내가 퇴근할 때 물어본 일이 잘 진행되었다고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 상사에게 설명을 잘해 그 일이 성사된 거라고 공치사했다. 전화를 끊지 않고 이어 상사인 과장이 판단 실수한 때문이라며 요즘 자주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험담했다. 나도 그렇긴 하더라구요. 내가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말입니다. 김 과장 결혼할 때 가서 축의금도 냈는데, 내 결혼식엔 오지도 않고 축의금도 안 보냈습디다라고 응수했다. 그때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밥상을 내려쳤다. 놀라 전화를 바로 끊었다.

상을 물린 아버지는 옮기기도 어려운 욕을 하며 심하게 나무랐다.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김 과장한테 할 얘기를 아래 직원에게 하느냐는 것이고, 김 과장이 부조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섣불리 둘 사이의 일을 발설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바로 전화해 설명하라고 했지만, 집 번호를 모른다고 하자 내일 출근하자마자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축의금 안 냈다고 비난하지 마라. 왜 안 냈느냐고 물어보긴 뭣하지만, 그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다. 네가 100을 줬다고 상대가 반드시 100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정 서운하면 네가 그의 봉투를 만들어 축의금을 접수하면 될 거 아니냐라며 옹졸함을 책망했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이 네 마음과 같지 않다. 더욱이 네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네 기대에 맞춰 정형화하는 건 위험하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다르다. 천 사람이면 천 가지 방식이 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꼭 사귀어야 한다면 상대의 방식을 따라라.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데서 균열이 생기는 거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다라고 일러줬다.

이튿날 출근길에 거래처에 들러 김 과장을 만났다. 상황 설명을 하자 그는 집안에 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다며 축의금은 아래 직원에게 부탁했어요. 지방에서 제가 결혼식 할 때 일부러 시간 내서 와주셨는데 못 가봐 아쉽고 미안합니다라며 축하 인사를 다시 했다. 그의 말대로 결혼식 방명록에 그의 이름이 있었으나, 축의금 봉투는 없었다. 퇴근 무렵에 확인되었지만, 부탁받은 직원이 방명록에 봉투를 낸 여러 사람의 이름은 남겼으나 유독 김 과장 봉투에는 이름을 적지 않고 접수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기다리던 아버지께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사람은 사귀는 게 아니라 얻는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이나 직연(職緣) 등의 연처럼 공유하는 가치가 클 때는 사귀기 쉽다. 웬만한 틈은 함께 느끼는 가치가 커서 메워주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가 희미하면 상대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구분해 가르쳤다. 이어 마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포용심(包容心)이고, 그게 너의 도량(度量)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 크기가 크면 클수록 담을 사람 수도 늘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포용을 파자해서 중요한 말이라는 설명을 이어갔다. ‘()싸다감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쌀 포(?)’자와 뱀 사()’자가 결합했다. 태아의 팔과 다리를 생략하고 자궁과 태아를 함께 그린 것이다. ‘얼굴이나 용모라는 뜻을 가진 ()’자는 집 면(?)’골 곡()’자가 결합해 보관하다라는 뜻으로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많은 표정을 담을 수 있는 얼굴을 뜻한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그들을 빛나게 해야 네 교제가 빛난다고 강조한 아버지가 인용한 고사성어가 구이경지[久而敬之]’.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나오는 공자 말씀이다. 원문은 안평중은 남과 더불어 잘 사귄다. 사귄 지 오래되어도 상대방을 여전히 공경하는구나[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안평중은 제()나라의 탁월한 정치가로 영공, 장공, 경공까지 세 왕을 모시며 40년 동안 정치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남과 사귀되 아무리 오래돼도 공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처음과 나중이 변하지 않아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안영은 사람과 사귐에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관련짓지 않았다. 언제나 공평한 마음으로 공익만을 생각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은 타인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다. 다른 사람의 험담은 금물이다. 인간관계의 적응 폭을 넓히자면 자존심을 죽이고 포용심을 늘려 남을 공경하는 달인이 되어야 한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이라야 사람을 끌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올바른 삶을 살자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손주들에게도 일찍부터 가르쳐야 할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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