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삼성생명)이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된 2018년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때까지의 원동력을 '분노'라고 말해 충격을 자아냈다.
안세영은 5일(현지시간)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크게 실망했었다"라고 깜짝 발언했다. 이어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올림픽을 못 뛰는 건 아닌 것 같다. 배드민턴은 단식과 복식이 엄연히 다르다. 선수 자격도 박탈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협회는 모든 걸 다 막고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많은 방임을 하고 있다"고 직언했다.
안세영은 경기 후 자신의 발언이 대서특필되자 다시금 SNS를 통해 "선수 관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됐다"면서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그리고 권력보단 소통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해 드리고 싶었는데 또 자극적인 기사들로 재생되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달라"면서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주시고, 해결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안세영 "협회, 선수 체계적으로 키워야" 작심 비판
안세영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협회의 문제점에 대해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면서 "선수에게 '이번이 기회다'라고 말할 것만이 아니라 꾸준한 기회를 주면서 관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세영은 언제부터 '작심 발언'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에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2018년"이라며 "제가 목표를 잡고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제 분노였다. 제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식과 복식은 엄연히 다르고 다른 체제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단 감독님과 코치님이 나뉘어야 하고 훈련 방식도 각각 체계적으로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식 선수들은 개개인 스타일이 다른데 그걸 한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많지 않나 싶다"면서 "항상 성적은 복식이 냈으니까 치료와 훈련에서 복식 선수들이 우선순위였다"고 지적했다.
안세영은 "타이쯔잉(대만)은 트레이너 2명, 코치 1명을 데리고 다니고 천위페이(중국)도 이번에 트레이너 2명을 데리고 왔더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도 비판했다.
안세영은 "제가 프랑스오픈과 덴마크오픈을 못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 의지와는 상관없었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면서 "협회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은 채 (명단에서) 뺀다"고 말했다.
◆ 과거 협회 실수탓에 선수들 1년 자격정지 받기도
안세영의 작심 비판 후 배드민턴 협회의 졸속 운영과 선수 홀대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2014년 당시 배드민턴 간판스타였던 이용대와 김기정은 협회 실수 탓에 약물검사 관련 절차 규정 위반으로 세계배드민턴연맹(BWF)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을 통보받았다.
불시방문 도핑테스트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용대와 김기정은 2013년 세계반도핑기구(WADA) 검사관들이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협회가 관련시스템(ADAMS)에 입력했던 소재지인 태릉선수촌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러 도핑테스트를 받지 못했다. 협회가 입력 시기를 놓친 것도 포함됐다.
결국 협회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장을 보내 선수 잘못이 아닌 행정적인 절차라고 해명했다. BWF는 재심의를 열이 두 선수에 대한 1년 자격정지에 대한 취소를 결정했고, 협회에 4만달러(약 5480만원) 벌금을 부과했다.
◆ 선수는 이코노미 타는데 임원진은 비즈니스석 이용
지난 2018년 7월 중국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참가를 위해 배드민턴협회가 작성한 예산서를 보면 선수 6명이 출전했는데 임원은 8명이나 따라갔다. 또 감독과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에 탑승했는데, 임원진은 전원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5월 호주 대회 때는 임원 5명이 1600만원이 넘는 비용으로 비즈니스석을 타고 갔다가 '전력상 우승은 어렵다'며 8강전 이후 조기 귀국했다.
이에 코치와 선수들만 남아서 8강, 4강, 결승전을 치른 끝에 1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협회 임원들은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
◆ '국대 탈락' 정경은, 선발전 심사 의혹 제기도 재조명
2021년에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발전을 두고 현역 선수가 부정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리스트인 정경은은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2021년 배드민턴 국가대표선수 선발전 심사 의혹을 규명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당시 세계랭킹 상위 선수(복식 기준 8위 이내)를 자동 선발하고, 선발전 성적(50%)과 평가위원회 채점(50%)을 통해 최종 12명을 추렸다.
세계랭킹 10위를 유지 중인 정경은은 9승 4패로 탈락했다. 세계 상위 랭커 중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이는 정경은 뿐이었다.
정경은은 자신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가 평가위원회 채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선발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 7승 7패에 그친 다른 선수는 평가위원회에서 정경은을 제치고 뽑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은은 "평가점수(50%)에 대한 기준과 세부적인 항목을 알지 못해 승률이 높더라도 평가위원회에서 얼마든지 부정과 조작이 가능한 선발제도"라면서 "참가 선수들은 본인의 승률 외에는 선발기준도 모른 채 선발전을 치러야 하는 깜깜이 선발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배드민턴협회를 둘러싸고 '파파괴(파도 파도 괴담만 나온다)'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협회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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