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경은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700년대 말 프랑스. 왕실을 호위해온 제르제 가문의 오스칼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뜻에 따라 남자로 키워진다. 왕실 근위대 장교로 일하며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귀족들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그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시민의 편에 선다. 귀족 출신으로 혁명의 최전방에 나선 그는 결국 총을 맞고 죽는다.
뮤지컬의 막이 오르면 화려한 무대가 관객을 맞는다.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저력이 느껴진다. 베르사유 궁전을 옮겨놓은 듯한 화려한 연회장부터 프랑스 빈민가까지 현장감 넘치는 다채로운 무대가 놀랍다.
무대는 화려하지만 캐릭터의 입체성이 아쉽다. 주인공 오스칼은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고, 우직하고, 정의롭다. 힘도 세 남자 군인 열댓 명을 혼자서 쓰러뜨릴 정도다. 그러나 내적 갈등이 표현되지 않아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다. 낮에는 신문기자로 일하며 혁명 정신을 퍼뜨리고, 밤에는 가면을 쓴 흑기사로 의적 활동을 하는 베르날은 초반에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극 후반 오스칼의 동료 수준으로 특징을 잃고 만다.
이야기를 다각도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이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오스칼의 신하 앙드레의 신분을 뛰어넘는 짝사랑, 흑기사의 정체, 오스칼이 구해준 소녀 로자리의 출생 비밀 등 주변 인물을 둘러싸고 다양한 플롯이 전개된다. 다만 이 이야기들이 오스칼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줄기와 연결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마무리된다. 플롯 사이의 연결이 더 끈끈했다면 이야기가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말에 이르러 인물들이 탄탄히 다져진 복선이 아니라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을 맞아 죽는 운명도 뜬금없어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고음이 가득한 시원시원한 넘버는 장점이다. 2시간 반 내내 출연진이 성량을 마음껏 뽐내는 작품이다. 출연진의 탄탄한 실력 덕에 지루하지 않다. 다만 완급 조절은 아쉽다. 초고음역대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배우들의 성대 차력 쇼처럼 느껴진다. 인물들이 고조된 감정을 놀라운 기교로 쏟아내는 순간의 충격이 작품 내내 계속되니 오히려 감동이 반감된다.
초연 공연인 만큼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음악의 완급을 다듬으면 훨씬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연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10월 13일까지.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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