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 디올 매장 생긴 줄"…혈세 6억 들인 화장실 '실소' [혈세 누수 탐지기⑤]

입력 2024-08-09 08:04   수정 2024-08-09 09:39

"의정부에 디올 매장 생긴 줄 알았어요. 6억원 들인 화장실이라니 참…"

30대 윤모씨는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을 보고 실소했습니다. 밤이면 찬란하게 빛을 내뿜는 화장실이 '인증샷 명소'로 유명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디올 성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겁니다. 20대 대학생 박모씨는 "우유갑 같다"라고도 평가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이 화장실, 짓는 데만 혈세 6억원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시민들의 뒷목을 잡게 합니다. 2020년 첫 삽을 떠서 2021년 말 문을 열었는데요. 건립 추진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에 '혈세 낭비'이자 '전시성 행정'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당(3.3㎡) 2000만원에 달한 공사비는 당시 지역 내 신축 고급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의 2배에 달했습니다.

"고작 2000만~3000만원 들여 컨테이너 하나 갖다 놓을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품격을 갖춘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하는 게 시장의 도리다." 당시 안병용 시장은 세간의 비판에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4년이 지난 6일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 팀이 '품격의 화장실'을 찾아가 봤습니다.
시에서 가장 큰데 비효율적인 '발광' 화장실

'발광' 화장실은 의정부역과 버스 정류장, 번화가를 잇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정부시 공중화장실 현황'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발광 화장실은 109.35㎡로 의정부 공중화장실 40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큽니다. 그런데 화장실 내 변기 개수는 남자 4개(소변기 2개·양변기 2개), 여자 4개, 다목적 2개에 그쳤습니다. 3분의 1 면적인 동막교 공중화장실(34.3㎡)과 변기 개수가 같았고, 절반 면적인 캠프라과디아 공중화장실(54.25㎡)의 16개에 비해서도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바로 옆 의정부역 화장실만 가도 남자 화장실 소변기 개수만 10개, 양변기는 5개에 달합니다.

당초 발광 화장실 건립은 1호선 의정부역 택시 승강장 근처에 공중화장실이 없다는 택시 기사들의 민원 등이 다년간 접수되면서 2018년부터 추진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서는 택시 기사님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 화장실이 지어지기 전에는 택시 승강장이 이곳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일대가 정비되면서 택시 기사들이 가기 애매한 위치에 화장실이 들어서게 됐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실제 인근 택시 승강장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은 "시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택시 기사는 "수억 원을 들였다는데, 1억원이면 충분해 보인다"면서 "갈 일이 없다"고 혀를 찼습니다. 다른 기사는 "바로 앞에 의정부역 화장실이 더 가깝고 깨끗하다", "차라리 백화점 화장실을 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발광 화장실' 내부는 노란색으로 밝은 느낌을 주면서도, 때가 잘 드러나 지저분한 인상을 줬습니다. 오히려 살구색인 역내 화장실이 더 깨끗한 느낌이었습니다. 건물 일부가 깨져 내부가 들여다 보이는 탓에 내구성에 의심도 드는 상황입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그나마 엇갈렸는데요. "화장실은 그냥 화장실처럼 지으면 되지, 6억이나 들일 필요가 있었을까"(30대 김모씨), "돈을 쓸데가 참 없었나 보다"(20대 이모씨), "시 땅이 시청 그림판인가"(30대 주모씨)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 반면, "출근길에 역까지는 도저히 용변을 참기 어려울 때 중간에 들러 요긴하게 사용한다"(30대 박모씨), "버스 정류장 앞에 화장실이 있어서 편하다"(한 모녀)는 입장으로 나뉘었습니다.
화장실의 '아름다울 필요'는 어디까지
그나마 유지 관리비는 다른 화장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의정부시. 시는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에도 발광 화장실을 출품했다고 귀띔했습니다. 올해로 26회 차를 맞은 이 공모전은 행정안전부와 한국화장실문화협회가 '안전하고 쾌적한 화장실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공중화장실 평가는 ▲법률에 적합한 설치 기준 충족 ▲청결 유지관리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편의 증진 ▲에너지 절약 등 탄소 배출 줄이기 동참 ▲지역 특성 등을 반영한 디자인 창의성 등 5개 기준으로 진행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공모전이 지자체의 혈세 낭비를 더욱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렇게 찾다 보니 작년 대상(대통령상) 수상작은 서울 올림픽공원의 평화의문 B화장실이었습니다. 올림픽공원 시설 관리 및 사업은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합니다. 이 공단은 정부의 직간접 지원금 100%로 운영되니 모든 사업이 사실상 우리 혈세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혈누탐팀은 부랴부랴 이곳도 찾아가 봤습니다. 마치 호텔 화장실을 방불케 하는 이곳 천장에는 올림픽공원 9경 영상이 나오는 광고용 모니터 4개가 달려있었고, 시스템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핸드 드라이기는 100만원을 훌쩍 넘는 '다이슨'사의 제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을 탄 후 올림픽공원은 3억원을 들여 기존 2개의 화장실(만남의 광장 국민체력센터 A2동·평화의광장 편익시설 A-1동)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일부 설비를 제외하고 싹 철거하고 타일부터 천장, 출입문, 위생기구까지 다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은 2평 남짓 공간에 시스템 에어컨이 2개가 각각 달린 모습이었습니다. 소변기와 양변기로 구분된 섹션에 에어컨을 따로 달아놓은 것입니다. 한 관계자는 "너무 노후화되어 리모델링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이 넓은 공원 안 화장실 상당수는 꽤 오래된 모습이긴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화장실도 이렇게 만든다면 걱정이 앞섭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리모델링된 화장실들은 광장 내 다른 건물들에 위치해 내부만 바꾸면 됐지만, 대부분 화장실들은 야외에 단독 건물로 있기 때문에 공사를 한다면 내외부를 싹 바꿀 가능성이 커 화장실마다 수억 원이 들어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되는 걱정 속, 조사를 하다 보니 화장실 세금 논란의 '원조'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대구 군위군의 '어슬렁대추공원'의 혈세 7억원이 투입된 화장실입니다. 이 화장실은 지역 특산품인 대추를 형상화한 걸로 유명합니다. 혈누탐팀이 네이버 거리뷰(2023년 4월 기준)를 통해 본 이곳은 '쌩뚱맞다'는 인상입니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시민들도 같은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구 2만명 정도인 군위군인데, 시내에서 20km를 달려가야 나오는 이곳에 수요가 있을 지 의문입니다.
파리·중국과 비교하면 양반이지만…

최근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나오는 파리의 화장실 실태를 생각하면 한국은 그래도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중화장실이 부족해 노상 방뇨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는 최근 올림픽을 두고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성용 간이 화장실은 길거리 한복 판에 있는데 칸막이가 없어서 논란이 됐습니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비위생적이며 칸막이 없는 화장실로 자국 내에서도 도마 위에 오른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5년 '화장실 혁명'까지 지시했을까요. 위생적이지 못한 화장실은 각종 질병이나 전염병에도 노출될 수 있는 만큼 공공 복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화장실이 '세계 일류' 급으로 등극한 데에는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으로 불린 고(故) 심재덕 전 의원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원시장으로 월드컵 개최도시 유치운동을 펼치던 1996년 화장실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98년 한국화장실협회, 2007년 세계화장실협회(World Toilet Association·WTA)를 발족시켜 화장실 문화 개선 운동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심지어 암 판정을 받았을 당시에도 가족이나 외부에 알리지 않고 WTA 창립 준비에 매달렸을 정도로 화장실 발전에 진심이었습니다.

타국 화장실과의 비교, 고인이 되신 심 회장님의 노력을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과 안도감이 들면서도, 여전히 머릿속에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떠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표어를 만든 걸로 알려진 표혜령 한국화장실문화협회장은 "지자체에서 공모전 문의가 오면 너무 많은 예산을 들이지 말라고 얘기한다"며 "돈만 많이 들여서 예쁘게 잘해놓기만 한다고 상을 주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물론 하루 화장실 이용객 수가 10만~20만명이라면 (화장실 건립에) 10억원을 들여도 된다"면서 결국 중요한 건 '수요 공급의 법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도 기왕 세금이 들어가는 일에 시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쓸 수 있는 정도면 됐지, 필요 이상으로 지을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어디까지나 화장실일 뿐이니까요. 오히려 아낀 예산을 다른 데 쓸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것입니다. 심 회장께서 살아계셨다면 아마 "아낀 돈으로 노후화된 화장실 한 개 더 개선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예산을 쓰는 관행이나 구조적인 문제도 많고, 무리한 사업을 진행할 때 견제적 장치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적은 돈을 쓰더라도 시민들이 편리하고 잘 썼다는 평가를 들을만한 방향으로 화장실 문화 개선도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신현보/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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