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로밍센터는 휴가철인데도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어요. 대신 인천공항에 있는 유심 수령센터가 붐볐습니다."
최근 동남아로 휴가를 다녀온 20대 직장인 김모(28) 씨는 해외여행을 준비할 땐 현지 유심부터 챙긴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기내에 같이 탄 여행객들도 내릴 때가 되니 다들 유심부터 갈아 끼우더라"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로밍 대신 현지 유심(USIM)이나 이심(eSIM)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된 모양새다. 휴가철을 맞아 통신사들이 다양한 로밍 상품과 혜택을 내놓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로밍 요금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심이란 가입자 식별을 위해 휴대폰에 장착하는 작은 칩이다. 유심에는 휴대폰 번호와 통신사별 요금제 정보가 들어있다. 최근에는 물리 칩 없이 휴대폰 내부 기판에 정보를 저장하는 이심도 대다수의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어, 편의성이 커졌다. 현지 유심을 장착하면, 로밍 없이 현지 통신사의 데이터망을 쓸 수 있는 구조다.
8월 말 휴가를 앞둔 직장인 최모(28) 씨도 유럽 여행을 대비해 미리 현지 유심을 구매해 택배로 받아두었다. 최 씨는 "비행기에서 유심을 바꾸는 번거로움은 잠깐이지만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격 측면에서 현지 유심이 훨씬 저렴하다"면서 "로밍 상품이 저렴해졌다고 해도 '요금 폭탄'을 맞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차라리 국내 유심을 빼두는 것이 속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일본 후쿠오카로 4일간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이모(26) 씨 역시 이심을 구매한 뒤 여행길에 올랐다. 이 씨는 "만원도 안 드는 가격에 데이터를 편히 이용했다"며 "여행지에선 메신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지도 앱 정도만 쓰기 때문에 휴대폰 번호가 달라져도 무관하다. 굳이 로밍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심이라 칩을 갈아 끼우는 번거로움도 없다"고 덧붙였다.
여행 기간이나 국가, 데이터 이용량에 따라 가격은 다르지만 대부분 같은 조건으로 비교했을 때 온라인 쇼핑몰, 공항 등에서 현지 유심을 구매하는 것이 로밍 상품보다 최소 50% 이상 저렴하다는 것이 여행객들의 중론이다.
특히 일본, 동남아 등 인기 여행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현지 유심과 이심은 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예컨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LTE 데이터 무제한 현지 유심은 개당 1만2000원 수준으로 6일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국내 통신사에서는 로밍 무제한 상품에 가입할 경우 하루에 1만5000원가량이 든다. 로밍 상품 하루치의 값으로 여행 기간 내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격이다.
1일 통신시장 조사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의 '2024 상반기 이동통신 기획 조사'에 따르면 해외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통신 데이터 수단 역시 유심과 이심이었다. 이용률이 42%에 달했다. 로밍은 33%로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30의 현지 유심 사용률은 58.5%로 편차가 확 벌어진다. 2030 여행객의 10명은 6명꼴로 현지 유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동기와 비교했을 때 유심과 이심만 사용률이 늘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통신사들의 로밍 상품은 소비자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통신사는 국내에서 5G 무제한 상품 등 고가 요금제를 이용할 경우 로밍을 무료로 제공하는 혜택을 내놓기도 했으나 이 경우 데이터 속도가 너무 느려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실제 이용자 사이에서 나온다. 공항 내 통신사 로밍센터에서 제공하던 110v 변환 플러그 대여 서비스 또한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중단·축소되면서 소비자의 불만이 늘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지 통신사의 데이터 이용요금 단가가 국내와 견주었을 때 저렴하기 때문에 현지 유심이 낮은 가격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며 "국내 통신사들이 로밍 상품의 이용 혜택을 확대하거나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앞으로 여행객의 현지 유심 이용률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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