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TSMC와 삼성전자가 서있는 자리

입력 2024-08-07 17:53   수정 2024-08-08 00:07

주요국의 핵심 전략산업으로 부상한 반도체를 둘러싸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인다. 지난 10년간(2013~2023년) TSMC는 매출이 약 22조원에서 91조원으로 312%나 늘었지만, 삼성전자는 229조원에서 259조원으로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1분기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시장 점유율은 TSMC(61.7%)가 삼성전자(11.0%)를 압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TSMC가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최근 TSMC의 시가총액(1367조원)은 삼성전자(523조원)의 2배를 넘어섰다.

물론 파운드리 중심의 TSMC와 반도체 전반에 걸친 사업 역량을 지닌 삼성전자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두 기업의 성장세 차이는 뚜렷하다. 이는 반도체산업에 대한 인식부터 정책적 지원까지 양국 간 기업을 둘러싼 환경 차이가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TSMC는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만에서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성한 산)’으로까지 불린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반도체산업은 대만이 미래에 국제적으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는 핵심 기둥”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와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한국의 다른 산업도 그러하듯이 세제, 공정거래 등 많은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는 과도한 규제 대상이 돼 왔다. 최근에는 경쟁국들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반도체산업 육성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대기업 특혜’ ‘부자 감세’ 논란에 막혀 제대로 된 지원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첨단 전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 확보 측면의 차이는 뚜렷하다. TSMC는 대만의 최우수 이공계 졸업생이 들어가지만, 삼성전자는 의대 진학 후 차상위 이공계 졸업생으로 채워진다. 노동시장 환경도 마찬가지다. 대만은 근로자 파견에 제한이 없고 근로시간도 유연해 기업들이 경영 여건에 맞춰 필요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심지어 근로자가 담당 업무를 맡을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면 해고도 가능할 정도로 노동시장이 유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을 비롯한 대부분 업무에서 파견 근로가 금지돼 있고 근로시간도 경직적이다. 근로자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노무 환경도 마찬가지다. TSMC는 1987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며 안정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TSMC를 창업한 모리스 창 전 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TSMC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물론 노조가 없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노조의 요구가 과도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과격한 파업이 이어지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노조가 생산 차질을 목표로 파업하면서 노조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봉쇄하는 노조법 개정안, 소위 ‘노란봉투법’까지 입법될 경우 반도체는 물론 산업 전반에 큰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TSMC가 처한 상이한 기업 경영 환경의 차이는 결국 두 기업 간 경쟁력 차이를 넘어 한국과 대만의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이제라도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발휘해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직된 고용·노동 환경을 시대에 맞게 개선하고 전략적인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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