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프라임데이 역대 최고 기록 달성”, “아마존 프라임데이 1~3위 싹쓸이”, “아마존 프라임데이 BB크림 부문 1위”….(2024년)
최근 뷰티업계가 앞다퉈 쏟아내는 자료의 제목은 몇 해 전과 확 달라졌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인 아마존의 연중 최대 할인 행사인 ‘프라임데이’에서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과거 중국 ‘광군제’와 ‘618행사’ 성과를 발표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이 성과는 중국 소비 트렌드와 시장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중국 할인 행사에서 얼마나 매출을 올렸고, 어떤 제품의 인기가 많았는지 등은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현지에서 K-뷰티 입지가 줄어들자 어느 시점부터는 행사 성적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근 이 발표의 타깃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업계의 주력 지역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프라임데이는 아마존의 구독형 유료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열리는 연중 최대 할인 행사로 올해는 7월 16~17일 이틀간 진행됐다. 올해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였으며, 아마존에 따르면 전 세계 프라임 가입자는 2억 명에 달하며 월 이용료는 14.99달러(약 2만원)다.
이번 행사에서 아마존은 전년 대비 11% 증가한 142억 달러(약 20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주문 건수는 9만3000건이며 품목당 평균 지출은 28.06달러(약 4만원)로 집계됐다. 평균 주문금액은 57.97달러(약 8만원), 계정당 평균 지출은 152.33달러(약 21만원)다. 화장품과 헬스&웰니스 부문은 각각 판매 4위와 5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에서는 코스알엑스, 라네즈, 에스트라 등 글로벌 핵심 브랜드들이 참가했다. 특히 2021년 인수한 코스알엑스 에센스 제품은 랭킹 1위를 기록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심지어 코스알엑스는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 5위권에 포함된 유일한 ‘화장품’이다. 아마존에 따르면 △아마존 파이어 TV 스틱(리모컨) △프리미어 프로틴 셰이크(음료) △리퀴드 I.V. 포켓(음료 파우더) △글래드 트래시백(쓰레기봉투) 등이 매출 1~4위를 차지했다. 코스알엑스 세럼이 뒤를 이어 5위를 기록했다.
프라임데이 성과를 발표한 곳은 아모레퍼시픽뿐만이 아니다. 미샤는 이번 행사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성장해 역대 최대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특히 BB크림 제품은 ‘BB크림 카테고리’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글로벌 브랜드와 상위권을 다투며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은 자사 뷰티 브랜드 메디큐브와 뷰티디바이스 브랜드 에이지알이 올해 프라임데이에서 지난해 성과를 크게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특히 뷰티 디바이스는 이틀 동안 약 1만 대를 판매했다.
비건 뷰티 브랜드 풀리는 세안용 제품이 이번 행사에서 6월 평균 일매출 대비 36배 초과 매출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현대약품의 클린뷰티 브랜드 ‘랩클’과 탈모 케어 화장품 브랜드 ‘마이녹셀’ 등이 이번 행사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프라임데이에서 한국 브랜드만 눈에 띄었다”며 “브이티와 아이패밀리에스씨는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 시 더욱 유의미한 성과가 기대된다. 여전히 한국 화장품 섹터는 저평가 상태라 판단하며 잠재력이 높은 브랜드사의 하반기 주가 반등을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중소 뷰티 브랜드인 바이오던스 마스크팩와 아누아 클렌징 오일 등은 미국 스토어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넘버즈인의 행사 기간 일 매출은 지난 6월 평균 일 매출의 30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니스프리, 구달, 티르티르, 조선미녀, 달바, 페리페라, 롬앤 등도 매출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오린아·오지우 이베스트주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아마존에서 K-뷰티 브랜드가 선전하고 있다”며 “세라비(CeraVe), NYX, 메이블린, 로레알, 솔 데 자네이로(SOL DE JANEIRO), 뉴트로지나, 라로슈포제(La Roche-Posay) 등 전통적인 서구권 브랜드 강세 속에서 코스알엑스, 아누아 등이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뷰티업계의 핵심 지역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대까지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중국 행사였다. 광군제는 중국의 하반기 최대 쇼핑 행사로 상반기에 열리는 ‘6·18 행사’와 함께 중국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2020년까지도 광군제에서 최대 매출을 경신했으며 그 성과를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2021년부터 C-뷰티(중국 브랜드) 매출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입지는 좁아졌다. 마케팅 효과가 줄자 이들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중국 마케팅을 축소했고 현지 행사 성과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후 몇 년간 해외 행사 성과를 알 수 있는 지표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주요 기업들이 아마존 프라임데이 성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프라임데이 결과로 미국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며 “예전에 중국 광군제에 주력했던 것과 유사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프라임데이 성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가장 중요한 뷰티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국가별 수출액에 따르면 중국은 27억8000만 달러로 여전히 1위 수출국이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그 수치가 23.1% 감소했다. 반면 미국 수출액은 12억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44.7% 성장했다.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동시에 한국은 미국 화장품 수입 국가 순위에서 중국을 제치고 5위를 기록했다.특히 전체 화장품 수출에서 차지하는 미국 비중은 2021년 9.2% 수준에서 2022년 10.6%, 지난해 14.3%로 늘어났다. 올 상반기에도 미국 수출액은 8억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61.1% 급증했다.
현재는 K-뷰티가 현지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나 세포라 등 오프라인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한국 인디 화장품을 유통 기업을 소개해주는 수출 전문 유통회사 실리콘투의 전체 고객 가운데 70%도 온라인 고객사로 추정된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화장품의 가성비 경쟁력 등을 고려했을 때 온라인을 넘어서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 채널까지도 확장할 수 있을 걸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세포라에 라네즈를 이미 판매하고 있으며 마녀공장은 지난 7월 코스트코 300개 점에 클렌징오일을 입점시켰다. 지난해 미국 소매시장 내 온라인 비중은 17.3%에 그친다. 김 애널리스트는 “미국은 여전히 오프라인 유통 중심이기 때문에 오프라인 유통 채널로의 확장만으로도 한국 화장품 기업들의 TAM(Total Addressable Market, 접근 가능한 시장)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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