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많은데 어쩌나…"강남 아파트도 무방비 상태" [현장+]

입력 2024-08-08 20:30   수정 2024-08-08 22:04


"일단 없는 것보다는 그나마 다행인데, 한편으론 막상 불났을 때 이걸 누가 사용할 수 있을까 싶네요. 방법도 모르는 데다 화재 영상 보니 불이 커지는 게 순식간이던데…"

8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지하 공영주차장에서 만난 40대 전기차주 시민 박모 씨는 충전구역에 비치된 '파이어 커버(질식소화포)' 상자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질식소화포란 유리섬유 소재의 커다란 천으로 차를 덮는 장비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소화약제가 제대로 침투하지 않기에, 공기를 아예 차단해 화재를 진압하는 원리다.

박 씨는 "최근 전기차 화재가 이어져 나도 불안한 마음"이라며 "배터리 화재용 금속 소화기나 질식소화포가 있는 주차장도 주거지 포함해 내 생활반경에선 이곳이 유일하다"고 푸념했다.


차량 140여대, 정전과 단수, 주민 23명 연기 흡입 등 막대한 피해를 낳은 1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연일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주차돼있던 전기차가 발화점으로 지목되면서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지하 전기차 충전소와 관련된 안전 규정과 나아가 전기차 충전소 구획 등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8일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두 곳, 업무용 건물 두 곳, 공원 인근 공영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충전소를 둘러본 결과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로 꼽히고 있는 질식소화포가 있는 곳은 공영주차장 한 곳뿐이었다. 서울 강남구는 현재 서울시에서 누적 전기차 등록 대수가 1만3703대로 가장 많은 곳이다.

금속 등 특수 화재에 쓰이는 리튬 배터리 전용 소화기, D형 금속소화기도 해당 공영주차장에만 비치돼있었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 한 곳은 23kg·20kg 대용량 분말 소화기가 있었으며 이외에는 모두 기존의 소방법령을 따른 3.3kg 일반 분말형 소화기뿐이었다.

이러한 무방비 상태가 발생한 건 금속 화재와 관련된 별도의 소방법령이 없어서다. 의무 사항이 아닌데 구태여 개당 단가가 10배까지 비싼 25만원 상당의 금속소화기나 50만~200만원까지 하는 질식소화포를 구비해둔 곳이 많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한번 불씨가 붙으면 수 초 만에 불길이 치솟는 전기차 배터리의 '열폭주' 특성 탓에 현실적으로 이러한 진압 장비를 손 쓸 틈조차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다.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 김모(53) 씨는 "내 차는 내연기관인데, 요즘엔 굳이 전기차 충전소와 가까이 주차하지 않는다"며 "금속 화재에 맞는 소화기가 있긴 해야겠지만 솔직히 소방관도 끄기 힘들어하는 불인데 일반 시민이 작은 소화기로 초기 진압을 할 수 있겠나"라고 의문을 표했다. 이어 "질식소화포도 누가 덮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다들 피난부터 생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영주차장에서 만난 30대 전기차주 이모 씨는 "질식소화포도 불길이 퍼지기 전에 이미 덮어져 있는 상태여야 효과가 발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래도 수조나 질식소화포가 비치돼있다면 소방관이라도 사용이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안전과 관련된 법령 개선이 지지부진한 사이 전기차 보유 대수는 최근 5년 사이 4배 이상, 전기차 충전기는 같은 기간 10배 이상 늘었다.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100세대 이상 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설치 법령은 2022년 1월에 진작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급에만 급급한 정책뿐이었다고 지적한다. 피난 동선 등 안전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단 기존의 주차장에 충전기 설치'만' 했다는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금 법령 기준으로는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 언급되는 여러 장비도 사실 일반인은 사용하기 어렵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일반적인 소화기는 4kg로 소용량인 데 반해 전기차 화재에는 수십 kg 단위의 대형 소화기가 여러 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어 "일반인 입장에서는 전기차 배터리가 폭발하면 유해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방독면을 착용하고 빠르게 대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진압 장비 구분, 확충과 함께 충전소를 설치할 때부터 주변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화벽을 구획하거나, 충전소를 지상으로 최대한 올리는 것이 대안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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