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요? 공상과학(SF) 소설을 쓰면서, 1년에 못해도 두세 번은 밴드 멤버들과 공연하는 삶이죠. 소설은 지금도 틈날 때마다 쓰고 있고, 아무리 바빠도 매일 20분씩 드럼 연습도 하고 자요.”
퇴근 후 뜻 맞는 사람들과 결성한 그룹사운드 합주실에서 드럼을 두드리고, 아트페어가 열릴 때면 소소한 미술 컬렉터가 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네덜란드 거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남긴 회화를 전부 눈에 담으려고 유럽부터 일본까지 전 세계 미술관을 찾았다. 근미래 SF소설을 쓰고 싶단 생각에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으로 맞붙었을 즈음부터 해외 대학 온라인 과정까지 물색하며 인공지능(AI)을 공부 중이다. 이름난 전업 예술가의 생활 같지만, 실은 어느 공무원이 틈틈이 가꿔온 취향이다.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얘기다.
용 차관은 문화 주무 부처인 문체부 내에서도 손꼽히는 예술 애호가다. 행정학을 전공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다소 삭막한 느낌의 경력과 달리 소싯적 음악 평론에 당선되는 등 클래식부터 현대미술까지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다. 지난달 4일 문화·예술·콘텐츠·종교 분야를 관장하는 문체부 1차관으로 임명되자 부처 안팎에서 ‘예술을 아는 행정가가 왔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지난 7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용 차관은 “대학 시절 일본의 재즈 드러머 가와구치 조지를 보고 드럼을 배웠고 꾸준히 연습해 공연도 하게 됐다”며 “1년에 보는 전시와 공연이 100개는 된다”고 말했다.
예술에 대한 애호는 시간이 남거나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지기 위한 게 아니다. 문화 정책을 다루는 공직철학과 인생관을 관통하는 지점에 마침 예술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용 차관은 “보통 어디에 집을 사고, 어느 기업에 취직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것이 강도 높은 행복은 맞겠지만, 지속 가능한 행복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각자의 생활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야 삶이 풍요로워진다”며 “이걸 채우는 건 퇴근 후 운동하거나 주말에 책을 읽으며 개발하는 ‘나만의 취향’”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하루평균 15시간씩 일할 때면 밤늦게 귀가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으며 일상에서 위로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일과 취향의 균형’의 삶이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나 예술인 창작활동을 돕는 ‘예술인복지법’ 등으로 구체화됐다.
용 차관은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만큼 국민의 문화 향유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두고 청년 예술가 지원 확대, 해외 한국어 확산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예술과 행정에 두루 해박해 예술인 출신인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직원들을 잇는 가교 역할도 맡았다.
“더 많은 행복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문화 정책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취향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써야죠.”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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