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남성이 건강보험에서 부부 관계처럼 대우받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의료보험 혜택은 법적인 부부든 사실혼 사이든 남녀 간 결합일 때 주어지는데, 동성 동반자에게 이런 권리가 주어진 것은 처음이다. 동성 동반자가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적용 대상이라는 법원 판단에 따른 파장이 적지 않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줄인 진일보한 재판이라는 긍정 평가와 함께 민법상 배우자 범위에 대한 확대 해석을 위한 전 단계의 판결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일부 종교계를 포함해 전통적 가족관을 중시하는 사회단체들은 즉각 반대 성명을 내고 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앞으로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의 분할 상속권 문제, 재산의 배분 갈등 등 민법에 정해진 가족관계가 무너지면 많은 혼란이 파생된다는 우려도 있다.
이 재판은 동성 배우자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이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적용을 취소하면서 비롯됐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가 경제적으로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부부와 이성 부부는 동일하다고 봤다. 이 경우 건강보험 배제는 헌법상의 평등 원칙 위배라는 것이다. 물론 현행 민법은 동성 동반자를 부부의 개념, 즉 배우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초적인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조차 차별하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성끼리’와 ‘동성끼리’를 달리 대우하면)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차별 관점에서 본 것이다.
이번 판결로 모든 차별 대우를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직접적으로는 가족제도와 사회보장제도다. 사실혼이어도 동성 배우자는 국민연금을 상속받을 수 없고, 동성 부부는 가족이 아니기에 공공임대주택 입주도 불가하다. ‘차별 금지’의 타파는 적극적 노력, 과감한 인식 변화 없이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가 존재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 나이·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는 이제 보편적이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동성 커플도 위축되지 않는 사회적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흑백 차별 폐지도 처음에는 반대와 논란이 컸지만 지금은 보편화된 원리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고 했는데, 이는 자의적이고 일방적이다. 사회에는 법 이전에 관행과 관습, 상식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다수의 보편적 합의로 다져온 이러한 기초 가치는 법원이나 소수의 판사가 독점하는 게 아니다. 동성 간 혼인 또는 사실혼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은 헌법과 법률에 명시돼 있다. 헌법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한다”(제36조)고 규정돼 있다. 가족제도의 근간을 담은 민법도 남녀 성별을 구분하는 부(夫), 처(妻) 같은 용어로 혼인의 양대 당사자를 지칭하고 있다.
대법원이 ‘헌법상 평등 원칙’을 과잉 해석하면서 이런 제도가 크게 흔들릴 공산이 커졌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동성 커플을 아예 법적 혼인으로 인정하자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 대법원이 민법(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 문제와는 다르다며 일단 확대해석은 막았지만 사회적 흐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혼인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여러 사회보장제도에서 동성 커플도 포함하라는 요구부터 뒤따르게 돼 있다. 나아가 배우자 유류분으로 인정 문제 등 상속법 개정 요구도 나올 수 있다. 대법원이 건전한 가정의 보호·양성 노력 대신 사회적·법적 파장이 우려되는 ‘튀는 판결’을 내놓은 책임을 져야 한다. 건강보험의 적용 차원을 넘어 재산권, 민간보험에서도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자칫 저출산 기류도 부추길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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