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선에 나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후보로 공식 지명한 공화당 전당대회가 지난달 18일 마무리됐다. 나흘 일정의 이번 전당대회는 트럼프의 유세 중 피격이란 극적 장면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열광적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트럼프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그의 당선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그런 까닭인지 우리 언론들 보도에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듯하다.
‘대관식(戴冠式)’은 세습군주가 왕관을 쓰는 예식을 말한다. 주로 유럽의 군주국에서, 즉위식 때 왕관을 머리에 올려 그 위상과 권력의 발동을 정식으로 공표하는 행사다. ‘즉위식(卽位式)’은 임금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백성과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그러니 즉위식이니 대관식이니 하는 말은 유래로 보면 임금 등이 있는 군주국에서 쓰는 말이다.
오늘날엔 영국을 비롯해 일본, 태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만 군주가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이들 국가에서만 ‘대관식’을 볼 수 있다. 군주국에 대비되는 말이 ‘공화국’이다. 한국이나 미국같이 공화제를 택한 대부분의 나라에선 국가원수인 대통령도 ‘대관식’이 아닌 ‘취임식’을 한다.
대관식에서 ‘대관(戴冠)’은 왕관을 머리에 쓰는 것을 말한다. ‘대(戴)’ 자의 쓰임새가 어렵다. ‘(머리에) 이다, 받들다’란 뜻이다.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말을 한다. 아니 불(不), 함께 구(俱), 일 대(戴), 하늘 천(天)이다.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같이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이 크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불공대천’이라고도 하는데, 같은 말이다. 여기서 ‘공’은 ‘함께 공(共)’ 자다.
윗사람으로 떠받들 때 ‘추대(推戴)’란 말을 쓴다. 여기에도 ‘일 대’가 쓰였는데, ‘밀다’란 뜻의 ‘추(推)’ 자와 어울려 어떤 사람을 높이 오르게 해 받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대관식’은 군주제에서 쓰는 말이라, 민주주의가 정착한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공화당 전당대회를 묘사하면서 이 말을 쓴 것은 ‘상징적 의미’를 담은 비유적 표현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8일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대관식의 정점을 찍는다.” 이 표현의 오류는 ‘단정적 표현’에 있다. 많은 국내 언론이 공화당 전당대회를 대관식으로 ‘규정’한 셈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달리 전달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전당대회에 대해 ‘트럼프 쇼(Trump show)’라고 이름 붙이고 대관식을 방불케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화당 전당대회는 대관식을 방불케 할 만큼 열광적인 분위기로 진행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18일 대선후보직 수락 연설은 사실상 93분간의 대관식이었다” “이번 주 공화당 전당대회는 사실상 ‘트럼프 대관식’이나 마찬가지였다는 평가다”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는 ‘방불케 하다’ ‘사실상’ 같은 언어적 장치에 주목해야 한다. ‘방불케 하다’는 ‘무엇과 같다고 느끼게 하다’, ‘사실상’은 ‘실지에 있어서’라는 의미를 더한다. 전쟁터는 아니지만 그것처럼 느껴질 때 ‘전쟁터를 방불케 하다’, ‘사실상 전쟁터’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어떤 사건을 보도할 때 단정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표현에 정확성과 객관성을 전달하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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