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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주요 외신이 '삼의 법칙(Sahm Rule Recession Indicator)'을 기사로 많이 다뤘습니다. 삼의 법칙은 클리우디아 삼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경기침체 예측 방법을 말합니다. "미국 실업률의 3개월 이동 평균이 직전 12개월 내 3개월 이동 평균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아지면 불황이 시작된다"는 내용입니다. 좀 복잡해 보이는데, 쉽게 말하면 "실업률이 갑자기 많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각박해지기 때문에 소비가 부진해지고 결국 경기 침체가 온다"는 얘깁니다. 여기서 '갑자기 많이'에 대한 걸 정량적 공식으로 만들어놓은 게 삼의 법칙입니다.
최근 외신이 삼의 법칙을 기사로 많이 다룬 건 이 지표가 말하는 경기 침체 요건이 충족된 차에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지난 2일 "지난달 실업률이 4.3%로 집계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과 6월 실업률이 각각 4.0%, 4.1%였기 때문에 최근 3개월(5~7월) 평균은 4.13%로 산출됩니다. 이런 식으로 최근 12개월 동안의 '매달 3개월 이동 평균 실업률'을 구해보면 지난해 8월 수치가 3.63%로 최저치입니다. 이 수치와 가장 최근 수치(4.13%) 간의 격차는 0.50%포인트로, 삼의 법칙이 정의한 경기 침체 요건에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국내 증권가에서 이미 한 달 전부터 삼의 법칙을 근거로 "곧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고 예고한 애널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주식전략파트장입니다. 약 보름 전까지만 해도 주식 시장은 고용과 소비 침체를 "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앞당기는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강 센터장은 지난달 8일 낸 보고서 「주식시장은 "대체로" 효율적이다」에서 "이런 시장의 분위기는 비이성적"이라고 경고를 날렸습니다. ▶본지 지난 9일자 <<a href="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7092136i">"하반기에 코스피 2300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왜?> 참조.
강 파트장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뒤 회복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무제한 양적 완화를 했고, 이게 경기 상황과 맞지 않게 미국에 너무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던 게 문제였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최근 고용 지표가 나빠지는 건 이런 과잉 고용이 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강 파트장의 설명입니다. 그는 "아직까지 미국 구인자 수는 팬데믹 이전 어떤 시기보다 많기 때문에 정상화까지 갈 길이 멀다"며 "미국은 고용의 개선·부진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추세성이 강하기 때문에 추가 하향 조정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강 파트장의 말대로라면 최근 미국의 고용 상황은 '정상보다 부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용지표 부진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이유가 있을까요? 정상화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대해 강 파트장은 "주가가 과대 포장된 고용 지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높아져 있었던 게 문제"라며 "고용 지표가 내려오면서 주가도 그에 맞는 수준으로 조정받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미국은 임금 소득이 소비의 60%를 지탱하고, 이 소비가 국가 경제의 70%를 지탱하기 때문에 고용이 기대에 못 미치면 국가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들 주지하듯 지난해 이후 주가가 높아졌던 상황의 핵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 파트장은 "얼마 전까지 주식시장은 'AI라는 패러다임 변화가 높아진 주가 수준을 정당화시켜 준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AI 관련 기업의 실적이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기대했던 만큼 웃돌지 못하면서 증시가 현실을 자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AI로의 산업 패러다임 변화가 나타났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AI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 않은 게 문제"라며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수요층이 없으면 다 무용지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강 파트장은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가 높아진 주가를 정당화시켜 준다고 생각했지만, 수요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서 주가가 무너졌다"고 덧붙였습니다.
강 파트장의 설명대로 최근 빅테크의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쳤을까요. 매출에 대해서는 그의 설명이 맞습니다. 최근 발표된 빅테크의 실적을 보면, 아마존 매출은 컨센서스(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 집계)에 0.4% 미달했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컨센서스를 각각 0.6% 상회하는 데 그쳐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시장이 내심 원했던 건 그게 아닌데 말이죠. 메타와 애플은 2분기 매출이 컨센서스를 각각 2.1%, 1.7% 웃돌아 다른 빅테크 대비 나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덕에 이들 종목은 나스닥지수가 고점을 찍은 지난달 10일부터 바닥을 찍은 이달 5일까지 각각 11.03%, 10.18% 떨어지는 데 그쳤습니다. 같은 기간 하락 폭이 15%를 넘은 다른 M7 종목(애플 제외) 대비 '비교적' 양호했죠.
엔비디아는 AI 대표 종목이었던 탓에 이 기간 주가가 25.54%나 떨어졌습니다. 가장 최근에 종료된 3개월 결산 단위(5~7월)의 실적이 아 나오지 않는데도 말이죠. 테슬라 역시 이 기간 주가가 24.45% 폭락했습니다. 매출이 컨센서스 대비 3.1% 높았지만, 평소 워낙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컸던 데다가 순이익은 컨센서스 대비 34.1%나 미달했던 탓으로 풀이됩니다.
강 파트장은 "최근 주가가 폭락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이 아닌 매출 추이를 보는 게 더 좋다"며 "다른 수치는 기업 내부적으로 효율성을 제고해 상황을 좋아 보이도록 만들 수 있지만, 매출은 이와 무관하게 전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코스피지수와 S&P500지수의 저점은 어디쯤일까요. 강 파트장은 "IT 버블 붕괴 때 코스피지수의 '12개월 확정 실적 기준 주가순자산비율(12M Trailing PBR)'이 0.7배까지 내려갔는데, 이를 현재 상황에 대입하면 2100 부근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S&P500지수와 관련해서는 "IT 버블 후 저점 수준까지 낮아진다면 3000선도 깨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강 파트장은 "지난 65년간 미국 주가와 경기선행지수의 궤적을 그려보면 양자가 거의 동행하는 모습이 보인다"며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개의 목줄을 쥔 주인이고 주가는 그 줄에 묶인 개다. 주가가 아무리 뛰어봤자 경제의 펀더멘털 근처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최근 증시의 상황은 주인에게서 멀리 떨어졌던 개가 다시 주인 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증시의 바닥이 어디쯤일까"라고 묻자 그는 "실질 금리가 완전히 바닥에 다다를 때까지 조정이 지속될 것이다. 경제 주체는 실질 금리가 0%에 수렴해야 비로소 새로운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라며 "현재 미국의 명목 금리가 5.5%이고 실질 금리가 3% 수준이다. 명목 금리가 2.5%포인트 인하돼 실질 금리와 같아질 때 바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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