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화재를 막기 위한 방어선은 3단계로 구성된다. 1차 방어선은 배터리셀 제조 단계에서 구축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비슷하다”며 “음식에 비유하면 수많은 종류의 레시피를 조합해 최상의 맛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를 구현하려면 오랜 제조 경험이 필요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굴지의 대기업조차 제조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장을 날려버린 일도 있었다.
김명환 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국내 배터리 3사는 스마트팩토리 개념을 도입했다”며 “엔지니어들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여러 공정상 비법을 디지털로 전환함으로써 해외 공장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수율을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력이 부족한 중국의 일부 공장에서 제조한 배터리셀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불량 배터리는 덴드라이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터리셀 내부에서 나뭇가지 형태로 달라붙는 결정체인 덴드라이트가 발생, 분리막을 찢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양극과 음극이 만나는 단락(합선) 현상이 생겨 화재를 일으킨다. 차량 외부의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로 인해 셀 내부에 수분이 발생해 단락을 일으킬 수도 있다.
테슬라는 BMS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이에 테슬라는 차량 구매자에게 ‘데이터 제공 동의’를 받는 절차를 마련해뒀다. 차량 구매자가 이에 동의하면 BMS가 측정한 데이터를 중앙 클라우드에서 실시간 수집해 분석했다. 전기차 분석전문 컨설팅회사 케이에이랩스의 성시영 대표는 “테슬라는 BMS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발생한 100건이 넘는 화재 사건에서 테슬라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가 구현하려는 차세대 BMS 기술도 이와 비슷하다.
최근 인천 청라동에서 차량이 전소된 메르세데스벤츠도 BMS를 통해 배터리 데이터를 클라우드 형태로 수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라 아파트 화재의 원인을 제대로 알려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소된 차량을 조사만 할 것이 아니라 벤츠에 데이터를 요청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국내 전기차산업은 차와 배터리 제조사가 분리돼 있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를 만드는 기업은 배터리 제조 공정을 잘 모르고, 배터리셀 제조사는 개별 운전자의 운행 습관 등이 배터리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전기차업체들은 셀 하나에서 화재가 발생했더라도 다른 셀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기술이 열폭주를 막을 3차 방어선이 될 수 있어서다.
김진원/김형규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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