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염정아는 영화 '장화, 홍련', '장산범', '외계+인', '카트', '밀수', 드라마 'SKY캐슬', 최근 공개된 '노 웨이 아웃' 등 어느 작품에서든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든 연기로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아왔다. 그는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크로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다.
12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염정아는 넷플릭스 '크로스'에 대해 "돈을 벌어 남자를 먹여 살리는 젠더 체인지 된 캐릭터가 재밌다"며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크로스'는 아내에게 과거를 숨긴 채 베테랑 주부로 살아가는 전직 요원 '강무'(황정민)와 남편의 비밀을 오해한 강력범죄수사대 에이스 '미선'(염정아)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락 액션 영화다.
"어떻게 나왔을까 걱정 많이 했는데 꽤 근사하게 나온 것 같아요. 황정민과 합심해서 공격하고 등을 맞대며 총 쏘는 장면에 특히 공을 들였죠. 또 전혜진과 여자들끼리 부딪혔던 신도 낑낑대며 신경을 많이 썼는데 멋있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염정아는 아시안게임 사격 은메달리스트, 별명은 '아시아 넘버 투' 미선 역을 맡아 미디어에서 흔히 그려진 전형적인 아내 역에서 탈피해 고난도 총기 액션을 소화하는 강력반 형사로 열연을 펼쳤다.
염정아는 "보이시 하게 보이고 싶어 쇼트커트를 했고, 의상도 형사답게 입었다. 저절로 목소리 톤이 나왔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극 중 미선의 자택에서 벌어진 회식 장면은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염정아는 "그게 제 첫 촬영이었다. 스태프들 얼굴 하나도 모를 때였는데 철판을 깔고 노래 불렀다. 정말 창피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노래 가사는 감독이 준비해 줬다. 촬영하기 전 4~5일간 카니발에서 반주 틀어놓고 엄청나게 불렀다. 매니저는 아마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염정아는 부부 호흡을 맞춘 황정민에 대해 "연기 잘하시는 거야 너무 잘 알지만, 현장에서 받은 감동이 있다. 액션이 많은 현장이라 현장에 일찍 오셔서 안전한지, 괜찮은지 체크해 주셨다"고 했다. 아울러 "연기는 가리지 않고 다 잘하신다. 응가하는 신부터 너무 웃긴 부분이 많았다. 케이크도 참 더럽게 잡수시더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몸치'로 유명한 염정아는 '밀수', '외계+인', '크로스'까지 연달아 액션 작품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액션 연기에 대한 자신감은 커졌는데 '언니네 산지직송' 가서 뛰어보니 아직 몸치인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도 연기할 때는 되더라고요. 꼭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되는 것 같아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죠."
염정아는 '또다시 전성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30년이 넘게 연기하며 평가를 받아온 것 같은데, 제가 생각했을 땐 'SKY캐슬' 때 제일 핫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크로스' 공개 직후 글로벌 순위 8위 이러니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며 "더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데뷔 34년 차 이러면 어마어마한 것 같은데 굉장히 빠르게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요즘은 어디를 가도 선배들보다 후배들이 더 많다"고 했다.
촬영 현장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염정아는 "'라떼는' 3일씩 밤새우는 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요즘은 딱 정해진 시간만 촬영하고 점점 편해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 부분에선 같다"고 했다. 그는 "요즘 연기가 너무 하고 싶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게 없어서 좋은 작품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하지 않던가. 염정아는 열심히 하면서도 즐기기까지 한다. "30대 초반에 제 이미지를 이미 마음속으로 무너뜨렸어요. 제한적인 역할이 계속 오더라도 '그게 어디야' 하며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저는 안 해본 걸 하는 게 재밌으니 도전하는 편이에요. 혹시나 '안 어울리는 데 왜 했어?' 하는 반응이 있을까 봐 공개했을 땐 조마조마하다가도 연기할 땐 신나게 합니다."
연기를 안 했다면 아마도 주부가 되었을 거라는 염정아. 그의 바람은 하나다. "오래오래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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