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바흐 무반주 첼로곡…악기 바꿨더니 '새로운 맛' 됐다

입력 2024-08-13 18:29   수정 2024-08-13 20:16

사골 요리는 누구든 ‘아는 맛’을 예상하는 법이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맛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사진)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이라는 사골 레퍼토리로 신선한 경험을 제공했다.

비스펠베이는 1990년 데뷔 음반을 포함해 1998년과 2012년 같은 레퍼토리로 세 번이나 녹음했다.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회를 족히 200회 넘게 치렀다. 한국에서는 2000년과 2012년 두 차례 무대를 선보였다. 이번 연주회가 이전 내한 공연과 다른 점은 악기였다. 바로크 첼로와 활을 사용한 과거 두 차례 연주회와 달리 이번에는 스틸 현과 엔드 핀을 당당하게 장착한 1760년산 조반니 바티스타 과다니니와 모던 활을 들었다.

현대 악기를 쥔 비스펠베이는 훨씬 자유로웠다. 그리고 파격적이었다. 템포 루바토가 늘어났고, 다이내믹의 스펙트럼도 극단적으로 확장됐다. 유려한 선율과 춤곡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부각한 선배들의 연주와 다르게 비스펠베이의 바흐는 투박하고 입체적이었다. 악보 곳곳에 연주자가 임의로 배치한 악센트와 프레이즈가 가져온 결과였다.

굳이 따지자면 비스펠베이의 바흐는 회화보다 서사, 즉 여섯 편의 ‘이야기’였다. 소리의 색채와 레이어, 질감, 균형미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전개를 중시하며 춤곡의 리듬에 실린 인간의 희로애락을 각양각색의 수사를 동원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다. 모든 모음곡의 프렐류드는 이야기의 시작을, 역동적인 발걸음으로 마무리되는 지그는 장엄한 결말을 상징했다.

음표라는 비언어적 암호로 기록된 이야기 속에서 연주자는 상황과 분위기, 제스처, 표정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새로운 디테일을 상상했다. 현란한 활놀림으로 빚어낸 쿠랑트와 부레에서는 다혈질의 급한 성격이, 장난스럽고 경쾌한 가보트에서는 주인공이 느끼는 명랑한 기쁨이 꽃피었다.

3부에 따로 연주한 모음곡 6번은 높은 음역 때문인지 여성의 서사처럼 다가왔다. 본래 피콜로 첼로를 위해 작곡한 모음곡에서 비스펠베이는 비브라토를 훨씬 많이 사용하고 시시각각 바뀌는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화려한 기교로 처리했다. 백미는 가장 음표가 적은 사라방드들이 장식했다. 희미하게 포진한 음표들 사이의 여백을 통해 그는 침묵이 소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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