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임상에 진입하는 신약의 임상의약품(API·활성제약성분)을 종류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 생산해 본 기업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에스티팜 같은 대형 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 얘기가 아니다.
충북 오송에 있는 큐라켐은 신약개발사의 의뢰를 받아 약물이 우리 몸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배출되는지를 보기 위한 특수 임상의약품을 2009년부터 만들고 있다. 사업 특성상 고객사명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신약에 도전 중인 항암제부터 펩타이드 의약품, 항체약물접합체(ADC)까지 다양한 임상용 의약품을 만들어 각사에 공급했다.
최근 만난 신숙정 큐라켐 대표(사진)는 “국내에서 임상에 진입한다는 신약 후보물질 중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큐라켐의 고객사도 3분의 2는 해외업체다. 수년 이상 맡기는 고객사가 많아 충성도도 높다. 약물대사분석을 위한 임상의약품이라는 틈새시장에서 큐라켐이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신약개발을 위해선 투여한 약물이 얼마나 오랜 기간 체내에 머무르며 얼마만큼의 양이 사용되고, 또 언제쯤 배출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약물동태학(PK)이라 부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허가기관이 중점적으로 보는 데이터다. 문제는 섭취 또는 투약 후 핏속을 따라 흐르는 약물의 농도를 어떻게 측정할지다. 업체마다 그리고 약물마다 제각각인 측정 방법을 가져오면 허가기관 입장에서는 이를 두고 평가하기 곤란해진다. 신뢰도 확보도 어렵다.
미국 FDA는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인 임상의약품으로 PK를 보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의약품 속 일반적인 탄소를 방사성동위원소인 탄소로 바꾸도록 한 것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화학적인 성질이 완전히 같다. 채혈 후 방사성동위원소가 붙은 임상의약품 성분이 내는 방사선량만 검출하면 된다. 이를 위해 큐라켐은 인증 받은 시설(GMP)을 만들고 각 제약업체들이 제출한 합성방법을 토대로 방사성동위원소가 든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비임상용 의약품을 합성하는 데는 평균 2개월, 임상용 의약품은 평균 6개월 정도가 걸린다.
신 대표는 “이 분야에서 경쟁력은 합성능력과 높은 납기준수율에 있다”며 “큐라켐은 양쪽 모두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빨리빨리’ 같은 한국인의 특성 때문인지 경쟁업체 대비 납기가 10% 정도 더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임상 기간이 곧 비용인 만큼 한 번 큐라켐의 고객이 되면 충성도가 높아 이탈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파트너가 된 뒤 제약사들을 맡게 됐다. 신 대표와 제약업계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GE계열사가 방사성동위원소표지화합물 합성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며 “일본 시장 점유율이 높은 업체였는데, 철수 후에 이 시장을 노려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창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큐라켐 설립 당시 국내에도 경쟁사가 있었다. 하지만 단일화를 거쳐 큐라켐이 이 회사의 장비를 인수했다. 인력을 흡수하고 거래처도 가져왔다. 신 대표는 “일본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업체였다”며 “덕분에 큐라켐이 일본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큐라켐의 매출 중 절반은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큐라켐은 미국과 유럽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매출이 2022년 140만 달러(약 18억원)에서 2023년 192만 달러(25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에도 미국과 유럽 사업실적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신 대표는 “우리가 가진 경쟁력이 미국과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시장에서 확인했다며 “가장 큰 신약개발 산실인 미국과 유럽에서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오송=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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