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은 가장 심오하다"…40년 만에 돌아온 꼼데가르송의 '히로시마 시크'

입력 2024-08-15 17:45   수정 2024-08-16 01:58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은 전 세계 ‘패피(패션피플)’가 열광하는 브랜드다. 일본의 여성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가 1973년 선보인 뒤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스타일로 명성을 얻었다. 불어로 ‘소년처럼’을 뜻하는 꼼데가르송은 반세기 동안 늘 예술과 패션의 경계에 있었다. 시작부터 그랬다. 아시아 출신 여성 패션 디자이너가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1981년 파리컬렉션에서 꼼데가르송은 ‘블랙’에 관한 개념을 통째로 무너뜨렸다. 거칠고 낡은 느낌을 낸 드레스와 테일러드 재킷은 그동안 서양 복식사가 이룩해온 전통적 아름다움을 전면 부정했다. 패션계는 이를 ‘히로시마 시크’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체주의 패션’의 원류로 일컬어진다.

꼼데가르송의 ‘히로시마 시크’가 창립 40주년을 맞이한 2013년 다시 찾아왔다. 블랙 색상과 독특한 소재에 기반한 ‘느와 케이 니노미야(Noir Kei Ninomiya)’ 라인을 선보이면서다. 느와 케이 니노미야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와 표현 방식을 탐구하는 장인정신으로 매 시즌 새로운 작품을 내놓고 있다. 최근엔 걸그룹 뉴진스를 비롯해 르세라핌, 트와이스, 아일릿, 아이브 등 유명 K팝 아이돌 스타가 이 라인의 옷을 입고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케이 니노미야는 2008년부터 꼼데가르송에서 패턴 디자이너로 일해온 인물이다. 평범한 불문학도였던 그는 학교 근처 꼼데가르송 매장을 자주 방문하며 패션에 관심을 키워갔다. 패션 디자인만큼이나 이에 어울리는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으로 유명한 매장에 매료됐다. 그는 이후 세계적 명문 패션스쿨 벨기에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꼼데가르송에서는 레이 가와쿠보에게서 옷을 만드는 다양한 기술과 사고 방식 등을 배웠다.

케이 니노미야는 느와 케이 니노미야의 2024년 가을·겨울(FW)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최근 서울을 찾았다. 니노미야와 협업한 세라믹 아티스트 다쿠로 구와타도 동행했다. 구와타는 2023년 봄여름(SS) 시즌부터 느와 케이 니노미야의 헤어피스를 담당해왔다. 니노미야와 구와타를 지난 8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났다.


▷과거에도 한국에 온 적 있었나.

(니노미야) 한국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벨기에 유학 시절 한국인 친구를 사귀며 굉장히 가까운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K패션 디자인과 많은 신진 디자이너를 접하며 일본과 다른 결의 아시아적 디자인 문화를 확립해온 것으로 생각한다.

(구와타) 19년 전 한국에서 열린 한 세라믹 아티스트 전시회에 방문한 적이 있다. 도예를 업으로 삼은 아티스트 중 컨템퍼러리 측면에서 접근하는 분이 많더라. 그런 부분이 굉장히 부럽고 좋았다.

▷최근 많은 K팝 아이돌이 당신의 옷을 입었다.

(니노미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늘 고민해왔다. 옷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도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그분들이 본인을 표현할 때 제 작업과 노력에 공감해주신 것 아닌가 한다.

▷원래 불문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나.

(니노미야) 사실 대학 전공과 패션업이 인생 계획에서 일직선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대학 진학과 별개로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다.

▷왜 꼼데가르송이었나.

(니노미야) 스토어 구성과 크리에이션 측면에서 울림이 컸다. 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경험이었다. 여기 들어가서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많은 한국인이 꼼데가르송에 열광한다.

(니노미야) 여기 와서도 인기를 실감했다. 따로 일본에 와주는 팬도 많다. 패션에 늘 열린 마음으로 최신 트렌드를 접하려는 분이 많은 점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구와타) ‘꼼데’의 사회에 대한 접근 방식이 통한 것 아닌가 싶다.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며 자극받는 점은 모두가 비슷한 것 같다. 저 역시 젊은 시절부터 꼼데를 동경하고 즐겨 입었다.

▷레이 가와쿠보와는 어떤 관계인가.

(니노미야) 꼼데가르송에서 제 커리어의 시작은 패턴 디자이너였다. 레이 가와쿠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실제로 구현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디자이너가 돼 별도 라인(느와 케이 니노미야)을 갖게 된 다음부터는 그분이 제게 직접 지시를 내린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영은 물론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 스스로 학습하며 나아가는 태도 등을 늘 많이 배우고 있다.

▷오랫동안 블랙 컬러에 천착해왔는데.

(니노미야) 단순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같은 검정이라도 텍스처(질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는 정말 심오한 컬러라고 생각한다.

▷꼼데가르송 내에서 느와 케이 니노미야의 의미는.

(니노미야) 제가 생각하는 블랙 컬러를 표현하기 위한 브랜드가 바로 느와 케이 니노미야다. 그렇지만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관과 흐름 등은 꼼데가르송 내 모든 브랜드가 함께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각 브랜드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쿠로 구와타와 어떻게 협업하게 됐나.

(니노미야) 사실 구와타와의 협업은 이번이 세 번째다. 원래 지인에게 소개받아 친구로 지냈다. 그러다 작품 세계와 제작 방식에 매력을 느껴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세라믹 소재를 헤드피스에 도입했다. 두 번째 협업에서는 구와타의 감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구와타) 나는 자극이 없으면 일하지 않는 사람이다. 상상하지 못했던 환경에서 일하면 자극을 받고 즐거움을 느낀다. 이번에 니노미야가 협업을 제의해 함께 재밌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느와 케이 니노미야를 입기를 원하나.

(니노미야) 아무래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분. 그중에서도 이 옷을 입고 본인의 의식이라든지 기분을 변화하고자 하는 분이면 좋겠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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