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는 글로벌 금융 산업에서 가장 혁신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1990년대 초반 도입된 이후 전 세계 투자자들의 필수적인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ETF는 본질적으로 거래소에서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펀드의 한 종류다. ETF 상장을 위한 중요 요건 중 하나는 포트폴리오 내 종목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인데, 금융의 미덕인 분산투자라는 목적을 소액으로도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국내 ETF 시장의 성장도 멈추지 않을 기세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KODEX 코스피 200 ETF’가 처음 상장된 후, 올해 7월 말 기준 한국거래소(KRX)에 상장된 ETF는 870여 개 종목, 순자산 규모는 160조 원을 달성했다. 소위 ETF의 장점으로 꼽히는 저비용, 투명성, 유동성이라는 장점에 더해, 최근에는 비트코인 ETF와 같은 기초자산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다. 서학개미 운동의 여파로 해외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활용한 다양한 테마형 ETF도 출시됐다.
무엇보다 2012년 확정기여(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과 같은 퇴직연금 계좌에서 손쉽게 ETF 매매가 가능해지면서, 기존 공모펀드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흡수하며 성장 중이다.
타깃데이트펀드(TDF)가 투자자의 생애 주기에 맞춰 글라이드 패스(생애주기 자산 배분)라는 단순한 솔루션으로 ETF 시장을 잠시나마 위협했으나, 그마저도 TDF형 ETF가 상장돼 목적에 따른 투자 편의성이 높아지는 추세다. ETF를 활용한 다양한 투자 방법을 살펴보자.
1. 단일 종목 적립식 투자
별다른 투자 전략 없이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특정 ETF를 사 모으는 전략이다. 워런 버핏은 2019년 CNBC와 인터뷰에서 “내가 죽으면 금융 자산의 90%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ETF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라”는 말을 했다. 일반 투자자들은 개별 종목 발굴에 대한 비효율적 노력이 필요하고 철저한 계좌 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소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buy low and sell high) 타이밍 전략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보니, 적립식 투자를 통해 시간 분산을 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저점에 살 확률이 51%, 고점에 팔 확률이 51%라고 해도 원하는 투자 결과를 얻을 확률은 26%(0.51x0.51)에 불과하다는 점이 적립식 투자에 대한 설득력을 더한다.
다만 적립식 투자 전략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매수 대상 ETF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박스권에서 움직이는 지수형 ETF에 투자하거나, 신기루처럼 수익이 사라질 수 있는 테마형 ETF에 대한 집중 투자는 조심해야 한다.
2. 매크로 환경 분석에 기반한 채권형 ETF 투자
2022년 3월부터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리테일 채권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높아진 채권 금리 덕에 투자 매력도가 올라갔고, 채권을 공부하는 투자자도 많아졌다. 채권의 가격은 금리 방향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상품이다. 최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움츠러들고 다시금 경기 침체 공포가 부각되는 중이다. 이에 채권 금리가 고점(가격 저점)에 이르렀다는 인식과 더불어 9월 미국 중앙은행(Fed)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며 채권 가격 움직임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채권 투자 역시 ETF를 활용해 손쉽게 할 수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채권 ETF 투자도 얼마든지 원금 손실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30년 만기 국고채를 매수하고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 손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대한민국 정부의 30년 내 부도 가능성을 0%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 만기 채권형 ETF를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해당 ETF의 포트폴리오는 30년 뒤에도 여전히 30년 만기 채권을 편입하기 때문이다.
채권형 ETF는 투자 목적이 확실해야 한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함으로써 쿠폰 수익률을 온전히 받고 싶은지, 아니면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 가격의 상승에 따른 매매 차익을 원하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전자라면 만기매칭형 ETF를 매수해야 한다. 자신의 자금 입출입 상황을 고려해, 적어도 특정 시점까지 ‘*.**%’의 수익률이 필요하다면 고려할 수 있다. 해당 수익률은 각 ETF 운용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손쉽게 확인 가능하다. 반대로 후자와 같이 단기간에 매매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라면 일반 채권형 ETF를 매입하면 된다. 다만 채권 가격은 만기에 따라서 가격의 움직임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3. 테마 리서치에 기반한 ETF 투자
챗GPT(ChatGPT)가 촉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시장에 대한 시장의 열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간의 AI 모형을 둘러싼 헤게모니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아마존, 엔비디아, 애플, 하이닉스, 삼성전자, TSMC 등 사업적 수혜를 어떤 기업이 주로 받을 것인지를 두고 투자자들은 고민한다.
ETF의 장점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해당 종목이나 밸류체인에 고루 투자하는 ETF를 사는 것만으로도 한번에 테마 익스포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수익성을 타기팅하는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는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적지 않다. 하지만 ETF는 거래 편의성이 높아 익스포저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시가총액 비중이 아닌, 특정 테마에 속한 종목을 동일 비중으로 투자하는 일종의 전략형 테마 ETF가 상장하거나 기관투자가 중심의 테마 로테이션 전략이 활용된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테마형 ETF에 투자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 인간이 소외공포(Fear of Missing Out·FOMO)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테마로 미국 아크인베스트먼트의 ‘ARKK ETF’에 열광했던 서학개미의 아픈 역사는 불과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4. 퀀트 전략에 기반한 ETF 투자
퀀트 투자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스마트베타라는 용어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시장 수익률 대비 초과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사이즈(size), 밸류(value), 퀄리티(quality), 모멘텀, 로볼 등 전통적인 성과 요인에 투자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통계적 계산에 기반한다. 만약 투자자 스스로가 퀀트방법론을 통해 별도의 개인화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국내외 주식을 대상으로 ETF를 활용해 손쉽게 퀀트 투자를 할 수 있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내재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해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밸류 팩터 ETF에 투자함으로써 손쉽게 팩터에 대한 익스포저를 가져갈 수 있다. 재무적으로 안정적이며, 수익성이 높아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을 투자하는 것은 퀄리티 팩터다.
이처럼 전통적인 팩터에 기반한 ETF들이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에도 상당수 상장돼 있다. 만약 특별히 선호하는 팩터가 없다면, 다양한 팩터에 동시에 투자하는 멀티팩터형 ETF 상품도 투자 대안이 될 수 있다.
5. 자산배분전략 실행을 위한 ETF의 활용
국내 투자자들의 자산 배분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채널을 통한 지식과 경험의 전달로, 한국의 자산 배분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12월부터 시작되는 퇴직연금 IRP 계좌를 대상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자산배분전략이 보다 주목받을 전망이다.
자산배분전략의 장점은 낮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자산군을 동시에 투자해, 특정 자산군이 하락할 때 다른 자산군이 상승하거나 덜 하락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자산군이 움직이는 요인도 차별적이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투자하면 시간 분산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주기적인 리밸런싱을 통해 리스크와 수익의 균형도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산배분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ETF는 빠질 수 없는 수단이다. ETF 자체로도 복수의 종목에 투자해 비체계적 위험을 줄이는 장점이 있는데, 복수의 자산군에 대해서도 ETF를 활용해 손쉽게 분산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배분전략은 크게 정적자산배분(static asset allocation) 전략과 동적자산배분(dynamic asset allocation) 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정적자산배분 전략은 포트폴리오의 리스크 대비 리턴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종의 자산군 사이의 황금비율대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주기적인 리밸런싱으로 해당 비율을 유지해 상대적으로 관리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널리 알려진 전략으로는 주식:채권 비중을 각각 60%, 40%로 유지하는 ‘6:4 포트폴리오’나, 주식:채권:금:현금의 비중을 25%씩 가져가는 ‘영구 포트폴리오(Permanent Portfolio)’,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올웨더 포트폴리오(All Weather Portfolio)’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각 자산군을 대표하는 ETF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한국에도 많은 마니아가 있는 전략이다. 불필요한 매매를 줄이고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장점이 있다. 다만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동적자산배분 전략은 특정 자산군을 대표할 수 있는 복수의 ETF를 활용해, 자산 배분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간다. 정적자산배분과의 차이점은 시장 상황이나 경제 지표, 또는 앞서 언급한 퀀트적인 기법 등을 활용해 시장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간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다양한 금융 데이터에 대해 접근과 관리가 편해짐에 따라 최근에는 ETF를 활용한 동적자산배분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더더욱 용이해졌다. 더구나 최근에는 AI 기법을 활용한 동적자산배분 전략도 로보어드바이저 업계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신 일반 투자자의 관점에서 동적자산배분 전략은 높은 매매 비용의 발생 가능성과 포트폴리오 관리의 어려움, 정확한 데이터의 분석이 수반돼야 하는 만큼 직접 전략을 수행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동적자산배분 전략을 활용한 투자 상품을 고려 중이라면, 해당 전략의 과거 성과와 백테스팅 자료를 통해 거래회전율과 최대 손실 폭 등을 꼼꼼히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6. 현금배당형 ETF에 투자하기
최근에는 분배금을 주기적으로 지급하는 인컴형 ETF 매수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고 편안한 노후를 대비하자는 주제가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인컴형 ETF의 상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이자지급형 ETF다. 앞서 언급한 채권 ETF가 대표적인 사례다. 예금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고 ETF의 매입 시점에 수익률을 확정 지을 수 있는 ‘만기매칭형 회사채 ETF’가 있다. 채권 현물을 직접 사는 것과 비교해, 투자 편의성 측면에서 압도적인 장점이 존재한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면 환율 위험을 감수하고 해외 하이일드 채권형 ETF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구조화 ETF도 존재한다. 커버드콜과 같은 기초자산에 파생상품을 결합한 ETF다. 나스닥 100 인덱스에 투자하며, 동시에 동일 지수 콜옵션을 매도하는 상품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고배당 주식+주가지수 옵션 매도’, ‘채권현물+이자율 옵션 매도’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화 ETF가 상장되고 있다. 다만 구조화 ETF는 수익 구조가 일반 투자자에게 직관적이지 않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현금흐름 자산형 ETF도 있다. 고배당 주식, 리츠(REITs)를 편입하는 ETF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기초자산을 편입해 목표로 하는 현금흐름을 배당의 형태로 수취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자산 가격의 상승에도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의 구조다. 다만 자산 가격 조정 시점에서 현금흐름을 초과하는 자본 손실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
인컴형 ETF에 투자할 때 유의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기초자산 가격 방어다.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초자산이 인컴 수익률을 초과하는 자본 손실을 기록한다면, 원금 회복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만약 자산 가격이 10% 하락했다면 원본 회복까지 +11.1%의 가격 상승이 필요하다. 그런데 5% 현금 인출을 병행하는 구조의 상품이라면, 투자자는 +17.6%의 더 큰 가격 상승이 필요해진다. 인컴의 크기가 기초자산 평가 금액에 연동된 구조라면 수익을 내는 것만큼이나 손실을 기록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투자의 복리 효과 상실도 고려해야 한다. 금융 투자 격언 중 분산투자만큼 강조되는 것이 복리 효과다. 작은 수익률이라도 재투자를 통해 시간의 승수로 자산 가치를 불려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만약 기초자산 가격의 방향이 우상향한다고 전제한다면, 현금 인출에 따른 복리 효과를 포기하는 것이 총수익(total return) 관점에서 언제나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배당·이자소득세 월납입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 제2의 월급을 꿈꾸는 투자자에게 월 배당 상품은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다만 ETF를 통해 지급되는 대부분의 재원이 주식 배당금, 채권 이자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매월 배당소득세를 원천징수로 납입하게 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물론 월 지급 금액이 크지 않다면 문제가 되진 않겠으나,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따른 종합소득세와 건강보험료 인상 가능성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ETF를 활용한 몇 가지 투자 방법을 알아봤다. 이외에도 다양한 투자 전략이 있고, 학계와 실무단에서도 ETF를 활용한 신규 전략과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투자 전략과 ETF 상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해당 투자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요동치는 금융 시장 변화 속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만들거나, 의지할 만한 타인의 투자 철학을 채택하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개별 ETF 하나하나를 다채로운 색깔의 레고 블록으로 비유한다면, 투자자들은 손에 870여 개의 레고 블록을 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해당 레고 블록을 차곡차곡 조립해 나갈 수 있는 조립 설명서가 부족하다. 한국 ETF 시장이 도약하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ETF의 장점을 오롯이 활용하기 위한 ETF 투자 솔루션의 대중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일호 업라이즈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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